만년필 크기에 대한 고찰은 몽블랑이 눈에 들어오면서 부터 시작된다. 그 이유는 바로 몽블랑 149 때문이라는 사실은 만년필 수집가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다. 보통 손 크기는 키와 비례하는데 한국인 평균키 175cm, 180cm이 넘지 않는 거구가 아닌 이상 손 크기는 서양 여성보다도 작다. 몽블랑 149는 서양인 체구, 특히나 남성을 타겟팅하여 제작된 초대형 오버사이즈 만년필로 일반 필기용이 아닌 서명용으로 출시되었던 모델이다. 근데 그 모델을 가지고 아시아인이 일반 필기용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 이는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몽블랑 브랜드 자체에서도 인지하고 있어 과거대비 현재 한정판 비율이 149 베이스가 아닌 146 베이스 비중이 커진 것도 이를 증명해주는 부분이다. 특히나 몽블랑 한정판 수요가 많은 중동 국가, 사우디나 아랍인들의 평균 키는 한국인보다도 작다. 당연히 중동국가에서도 인기 모델들은 오버사이즈 모델들이 아니며 이마저도 만년필의 불편함으로 인해 수성펜(롤러볼펜) 수요가 더 높은 편이다.
단순히 몽블랑 149가 최고의 펜이다 이런 말만 듣고 본인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보자. 자동차의 경우 21세기 들어서면서부터 세단의 시대가 끝이 나고 SUV 트렌드가 도래했는데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대형차에 대한 니즈가 커져갔다. 여성을 비하하는 목적은 전혀 없는데 도로를 다니다보면 대형 SUV를 타고 다니는 여성분들이 굉장히 빈번하게 휀더나 도어, 스텝 등을 긁어먹은 경우를 보게 된다. 본인이 본인 차 긁는게 무슨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긁힌 벽이나 기둥은 공공재다. 긁어놓고 벽이나 기둥을 복원해놓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특히나 주차공간이 협소하여 대형 SUV의 경우 조금이라도 한쪽 라인으로 치우쳐 주차하면 옆 차량은 문 열고 나오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본인에게 맞는 옷을 입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실용적이며 이상적으로 생활이 가능하다. 남들이 큰 것들을 추구한다고 본인까지 큰 것을 추구해야하는게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만년필도 마찬가지다. 남들 따라서 최고의 명펜이라는 몽블랑 149를 덜컥 구입하고선 결국 실사용시 크기 때문에 부담스러워 다른 모델로 전향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1930년대 몽블랑에서도 초대형기(역 30cm)를 출시했는데 당시 마케팅은 과시용, 서명용으로 진행되었다. 과거의 평균키가 지금보다 작다고 치더라도 당시 기준점이 되는 모델은 4호 사이즈, 오늘날은 6호 사이즈로 한단계 올려도 9호는 오버사이즈에 속한다. 과거엔 만년필 신제품이 출시하면 그 모델에 따른 크기 차이가 정말 다양했다. 오늘날 펠리칸의 m150, 200, 300, 400, 600, 800, 1000처럼 세분화 되어 본인의 손에 맞는 크기를 고르는게 가장 우선시 되었다. 물론 만년필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펜촉이 커지면서 필기감이 극대화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오늘날의 만년필은 필기용이 아닌 취미영역으로 변형되었고 장시간 필기가 아닌 짧은 시간 동안의 다이어리, 필사용 목적이 짙다. 학생이나 고시생들이 장기간 사용을 목적으로 구매하는 만년필이라면 m800이나 149같은 대형기를 고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손이 그만큼 크다면 전혀 상관이 없다. 만년필을 주 필기구로써 사용하던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본인 손에 맞는 크기는 정말 중요하다. 크기가 맞아야 오래 쓸 수 있고 손의 피로도를 줄일 수 있다. 그립의 디자인이나 펜의 무게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라 가장 핵심적이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는 펜의 크기다.
펜의 크기가 손에 맞는 사이즈라면 그 펜의 무게가 어떻듯, 디자인이 어떻듯, 그립이 어떻든 상관없이 손의 피로도는 일단 절반정도 줄어들게된다. 옷도 마찬가지고 차도 마찬가지다. 크기가 큰 옷을 입으면 그만큼 불편하고 뭐가 묻기도 한다. 크기가 큰 차를 몰다보면 그만큼 집중해서 운전해야하고 자주 긁기도 한다. 가장 기본중에 기본이 바로 크기인 셈이다. 대형기 닙에서 주는 매력적인 필감도 중요 포인트지만 본인 손에 딱 맞는 펜을 썼을 때의 손에 감기는 느낌 또한 중요한 포인트다. 딱 하나를 무조건 해야만 한다는 공식은 아니지만 만년필이라는 키워드만 주어지면 무조건적으로 대형기, 몽블랑 149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적어보고 싶었다. 특히나 초심자들이 몽블랑 146과 149 추천글을 올리면 대부분이 무조건 149로 가라며 6을 사면 결국 9를 사게되는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데 내가 겪은바로는 막상 149를 사고선 손에 맞지 않아서 판매하고 6으로 다시 오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이 보고있다. 아니 애초에 149를 경험하고선 아예 몽블랑이 아닌 다른 브랜드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현행 149는 전혀 매력적이지가 않고 단순히 크기가 크다고 해서 과거 명성의 149를 느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옛날엔 영풍문고 같은 곳만 가더라도 다양한 만년필들을 직접 쥐어보고 시필해보고 구매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럴 수 있는 공간이 대부분 사라졌다. 몽블랑이나 라미 정도 독립된 매장에서나 직접 쥐어볼 수 있는데 이마저도 모든 모델이 아니라 일부 모델에 제한되어있다. 취미 목적의 만년필 구매라면 필감을 우선적으로 보면 되고 공부를 위한 구매라면 손에 직접 쥐어보고 크기가 잘 맞는지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필감을 즐기는 일은 공부가 끝난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나 역시도 업무중에 실사용기로써 가장 많이 쓰는 모델은 손에 맞는 사이즈인 스몰-미드사이즈 모델들이고 각 잡고 필사를 해볼 때나 대형기로 바꿔 쥐고 있다. 아니, 요즘은 그냥 필사할 때도 미드사이즈까지 쥐고 쓰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만년필 장인이 운영하는 매장에서도 만년필 구매를 문의하면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내 손의 크기다. 이후 손에 맞는 다양한 모델들을 추천해준다. 커스텀 만년필을 의뢰해도 손의 크기를 먼저 측정한다. 물론 더 크게, 작게 커스텀이 가능하지만 그분의 기본 베이스는 사용자의 손 크기에 맞춰 제작이 들어가는 방식이다. 과거엔 나도 대형기를 무조건적으로 선호했으나 수많은 만년필을 써가며 자연스럽게 손에 맞는 사이즈를 찾아가게 되었고 일본의 장인을 만나고선 더욱 확고해졌다.
본인에게 잘 맞는 것은 트렌드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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