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에 있어서 1990년대는 휴대용, 여행용 만년필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144, 145 시리즈의 등장과 함께 기존 146 모델에 카트리지 사용을 가능케한 147 모델이 새로이 출시한 시기이다. 이러한 트렌드는 200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147의 바통을 이어받은 모델이 바로 보헴 시리즈다. 오직 카트리지만 사용이 가능하고 여분 카트리지까지 수납이 가능하여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몽블랑의 판매가격은 완성도, 품질, 실용성 대비 흔쾌히 지불할만한 수준이었다. 다소 보수적인 몽블랑이란 브랜드에서 이때처럼 다양한 제품군을 볼 수 있었는데 나는 이 시절의 몽블랑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만년필을 집에서 필사용으로 주로 사용한다면 굳이 카트리지 모델이 필요할까 싶겠지만 항상 휴대하면서 메모하는 이들에겐 피스톤 필러보다 카트리지 전용이 더 유용하고 편리하다. 간혹 저렴한 모델들은 카트리지를 꽂아도 피드가 잉크를 빨아들이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사용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어느정도 품질이 좋은 브랜드들에서는 카트리지를 꽂고 1분 이내로 잉크가 바로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제대로된 카트리지 전용 모델은 피드 구조를 직관적으로 설계함으로써 잉크흐름을 개선한 경우도 있으나 몽블랑 포함 대부분의 브랜드 제품들은 기존 제품의 피드를 동일하게 사용한다. 144, 145, 147, 보헴 등 몽블랑의 카트리지 전 제품은 실사용하면서 크게 불편함 없이 잉크가 바로 나와준다. 한가지 팁은 카트리지에 잉크양이 생각보다 적기 때문에 세필닙을 추천한다. M닙 이상을 카트리지 모델로 사용하고 필기량이 많은편이라면 하루에도 카트리지를 몇개씩 쓰게 될 것이다. 카트리지는 잉크를 다 쓴 경우에 주사기를 이용하여 잉크를 주입해 재사용이 가능하지만 지나치게 반복해서 사용한다면 카트리지 투입구 구멍이 넓어져 잉크 흐름에 문제가 생기거나 잉크가 새기도 하니 주의하자. 몽블랑의 카트리지 크기가 유독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작은데 오히려 작아서 잉크공급에 유리하다. 예로 파커사의 길쭉한 카트리지는 사용하다보면 잉크가 뒤에 뭉쳐있어 잉크가 남아 있음에도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는 컨버터 안에 들어있는 쇠구슬을 생각하면 되는데 카트리지는 내부에 플라스틱 볼이 들어있어 쇠구슬처럼 잉크를 확실하게 아래로 떨어트려주지 못하고 뒤쪽에 맺혀있는 상황이 발생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카트리지 전용 모델 중에서는 보헴의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생각한다. 해치형 노브에 회전방식으로 카트리지가 수납되는 구조는 얼른 카트리지를 수납하고 싶게 만든다. 147의 매력은 아무래도 146 모델을 카트리지로 쓸 수 있다는 점 아닐까 싶다. 6호닙에 146의 유선형 디자인. 물론 보헴에서도 오버사이즈 모델이 아주 잠시동안 생산되어 큰 펜촉을 사용할 수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카트리지 삽입하는 방법은 피스톤 필러처럼 하단 노브를 돌리면 내부 수납 가이드가 빠져나온다. 하나는 정방향으로 꽂고 여분용 카트리지는 반대방향으로 노브쪽을 향해 집어 넣으면 스프링이 이를 고정해주어 빠지지 않고 견고히 수납된다. 수납 후 배럴에 집어넣고 노브를 잠그면 자연스럽게 카트리지와 피드가 결합되어 잉크가 흘러나오게 된다. 여타 카트리지 방식처럼 카트리지를 강하게 피드와 결합할 필요 없이 나사산을 잠그면 자동으로 펀칭된다. 소장중인 147은 닙 사이즈 별로 전사이즈 소장중이며 주로 사용하는 닙은 EF닙이다. 휴대용으로 사용하면서 필기량이 많지 않다면 어떤 닙을 선택해도 상관 없지만 필기량이 많다면 필히 세필닙을 선택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147의 최초 출시일은 90년대 중후반이며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생산되고 단종되었다. 따라서 전부 투톤닙에 플라스틱 피드만이 장착된다. 버건디 컬러 버전도 있으며 닙의 금 함량은 14k, 18k 두가지 존재한다. 전용 트래블러 가죽 파우치도 함께 판매되었으며 펜 수납 가이드와 양 옆으로 카트리지 수납 홀도 6개 존재한다. 이외 필감이나 밸런스 등 크게 146을 벗어나지 않고 비슷한 느낌을 준다. 디테일하게 비교하면 아무래도 피스톤 필러 메커니즘이 없는 147의 무게감이 더 가볍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며 또 다른 차이점은 잉크창의 유무다. 카트리지 타입이기에 그립부 잉크창이 삭제되어 잔량확인은 어렵다. 잉크창이 없는 만년필들의 잉크주입 시점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굳이 분해해서 컨버터나 카트리지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데 쓰다보면 잉크는 잘 나오는데 약간 뻑뻑해지는 시점이 온다. 이때 분해해보면 잉크가 거의 바닥이다. 잉크가 나온다고 계속해서 꾹꾹 눌러쓰면 펜을 망가트리게 되기에 조금이라도 흐름이 박해지고 뻑뻑함이 살짝이라도 느껴진다면 바로 잉크 충전을 해주길 바란다.
카트리지 전용 만년필은 한가지 주의점이 있다. 카트리지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세척이 난감하다는 점이다. 컨버터라도 장착이 가능하면 컨버터를 이용하여 세척을 해주면 되겠지만 보헴이나 147처럼 아예 카트리지만 장착이 된다면 어떻게 세척을 해야할지 막막하다. 이때 방법은 크게 2가지다. 첫번째는 만년필 몸체를 통채로 초음파 세척기에 담궈 세척하는 방법이다. 컵이나 그릇에 물을 받아두고 만년필을 담궈두면 잉크가 다 녹아나기 위해서는 한나절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때 금속파츠에 도금이 살짝이라도 벗겨져 있으면 녹이 생길 수 있으므로 되도록 초음파 세척기로 짧게 담궈서 세척하고 끝내는게 좋다. 두번째 방법은 노브를 열고 뒤쪽으로 물을 흘려보내주면 된다. 간혹 호스를 이용해서 강한 수압으로 만년필 뒤쪽에서 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필요까진 없다. 만년필이 잉크를 배럴 내부에 머금고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뒤쪽이 막히고 밀폐되어 있어 압력차로 인해 흘러내리지 않는 것이므로 뒤쪽이 열려있다면 물을 흘려넣었을 때 피드, 펜촉으로 바로 흘러나오게 된다. 빈티지 만년필 중 피스톤 필러 타입인 경우 간혹 잉크를 주입했는데 잉크를 머금지 못하고 줄줄 흘러내리는 경우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발생한다. 피스톤 필러의 밀폐력이 떨어지면 잉크를 잡아두지 못하고 줄줄 새게된다.
이 시절의 몽블랑은 정말 다양하고 혁신적이고 재밌는 만년필들을 출시했다. 지금의 몽블랑은 기본 라인업도 축소하고 한정판 장사만 하고 있다. 한정판이 잘못됐다는게 아니다. 단순히 껍데기만 화려하고 디자인을 바꿔가며 보여지는 것만 바꿔서 출시할 뿐 예전처럼 쓰는 재미를 느끼기 어려워진 지금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한정판이라고 해서 이탈리아 수제 만년필 브랜드처럼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몽블랑이 어디서 많이 팔리냐면 두바이, 사우디아라비아 이런데서 한정판이 주로 소비되고 있다. 그쪽 나라에서 살고있는 지인이 온갖 한정판 몽블랑들을 쓸어가고 수집하는걸 보면 저래서 몽블랑이 지금처럼 한정판 장사를 할 수 밖에 없구나 싶긴 하다. 어차피 기본 라인업을 아주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판다고 한들 수요층 자체가 없는건 사실이다. 두바이 친구들은 싸고 흔하면 절대 사지 않는다. 비싸고 한정판이면 뭐든지 사버린다. 이제 몽블랑은 명품 필기구 브랜드가 아니라 그냥 명품 브랜드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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