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센트 필러에 이어 바통을 넘겨받은 필링 메커니즘은 1920년대 트렌드였던 레버필러 메커니즘이다. 레버필러가 장착된 대표적인 모델은 듀라그래프로 레버의 길이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크레센트 필러에서 다소 거추장스럽게 큼직했던 반원 버튼을 레버필러 시대로 넘어오면서 완전히 최소화를 시켰는데 시장반응도 좋고 타사에서도 짧은 레버를 내놓을 정도였다. 레버필러의 등장은 혁신적이었으나 외부로 드러나는 장치로 인해 외관을 해치고 손에 걸리는 등 불편한 점이 여럿 나타났다. 특히나 레버필러를 오래 사용하다보면 고정력이 약해져 레버가 흘러내려오는 경우도 빈번했다. 레버가 짧아짐으로써 앞서 언급한 단점들이 줄어들었지만 완벽하게 해소되지는 못했다. 듀라그래프 모델은 인기를 끌어 이후 1923년도 하드러버 염색 기술이 접목된 붉은색 모델, 1926년도 초록색 버전까지 출시하였다.
콘클린의 또다른 특징은 클립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의 만년필은 휴대하기 위해서는 캡의 클립, 캡탑의 링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클립을 주머니에 꽂는다거나 링에 줄을 걸어 휴대하곤 했는데 클립을 옷에 자주 꽂았다 뺐다 하게되면서 옷이 해지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클립의 장력을 유지하면서도 빼낼 때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스프링이 장착된 클립을 만들어냈다. 실용성을 추구하면서도 제품에 대한 보증까지 완벽했는데 콘클린의 듀라그래프 모델이 컬렉터들 사이에서 인정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포괄적 보증이다. 듀라그래프는 사용자 부주의로 인한 파손까지 수리, 교체를 보장했다. 당시의 평생 보증, 라이프타임 워런티들을 보더라도 사용자 부주의, 고객 부주의로 인한 파손은 보장하지 않는게 일반적인데 콘클린은 그런거 상관없이 수리를 약속했다.
듀라그래프 이후 후속작은 엔듀라로 위의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소 심플했던 전작에 비해 디자인 요소가 추가되었고 크레센트 필러, 레버 필러 두가지 옵션 선택이 가능했다. 남성용, 여성용 모델을 분리하여 출시했으며 남성용은 클립, 여성용엔 캡탑 링이 장착된다. 캡탑의 링에 고리를 걸어 주로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고 그 다음으로는 목걸이 형태로 휴대하는 스타일이 있었다. 콘클린은 가성비의 저렴한 브랜드 이미지는 아니었다. 고품질에 높은 가격대로 인식되고 있었고 이에 걸맞는 럭셔리한 제품들을 선보였다. 1920년대 중반에도 GFM, GRM의 오버레이 모델을 선보였으며 외장 인그레이빙은 트렌드에 맞게 담백하게 조각했다. GFM, GRM등의 오버레이 모델은 콘클린의 상징적인 메커니즘인 크레센트 필러들을 장착해서 선보였는데 이는 꽤나 성공적인 전략으로 판단된다. 이전에 포스팅했던 워터맨처럼 개선한 메커니즘 없이 이전의 메커니즘을 고수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메커니즘은 선보이고 일부 럭셔리 라인에 전통성 있는 올드 메커니즘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한 마케팅 전략인 것이다.
크게 듀라그래프, 엔듀라 두가지 모델과 마지막으로 노작 모델이 마지막 바통을 이어 받는다. 노작은 미국에서 최초로 피스톤 필러 메커니즘이 적용된 만년필이다. 1934년 펠리칸 100이 전세계 최초로 피스톤필러 메커니즘을 선보였고 2년 뒤 미국에서 콘클린 노작이 뒤따라 선보인 것이다. 당시의 명칭은 트위스트 필 메커니즘이고 잉크 주입량이 상당하는 것이 시장에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일반 사이즈는 5000자 가량의 글을 쓸 수 있었고 오버사이즈 모델은 7500자를 쓸 수 있다고 광고했다. 닙 사이즈에 따라 오차범위가 달라진다. 노작 모델에도 잉크창이 존재했으며 배럴 절반을 차지하며 몇미리가 나와있는지 눈금까지 있었다. 콘클린은 잉크 잔량을 체크할 수 없는 만년필은 가스 게이지를 확인할 수 없는 자동차와 동일하다고 광고했다. 이전의 전 모델은 클래식한 각져있는 디자인을 취했다면 노작은 트렌드를 반영한 유선형 디자인을 확인할 수 있다. 최초의 명칭은 노작이 아니었는데 엔듀라와 듀라그래프를 합친 엔듀라그래프였던 사실도 있다. 후기형 모델인 헤링본 디자인의 모델은 스트라이프 패턴으로된 잉크창이 적용된다.
콘클린 매니아들은 크레센트 필러를 경험할 수 있는 초기형 모델들을 추천한다. 오직 콘클린에서만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듀라그래프는 실물을 보고 직접 써보면 사실상 듀오폴드의 느낌을 받게되고 노작 또한 화려한 외관을 제외하면 펠리칸 100 이상의 감동을 느끼긴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복각품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 반응이 뜨거웠던 모델은 크레센트 필러가 장착된 한정판들이다. 듀라그래프는 아예 저가형 보급 모델로 판매를 하고있다. 개인적으로 콘클린의 크레센트 필러처럼 오직 그 브랜드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발한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요소라고 본다. 파커의 스피드라인 필러, 몽블랑의 텔레스코픽 필러 등 유일무이한 필러들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수집가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그 필러의 실용성, 완성도 등이 뒷받침 되어줘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크레센트 필러는 오직 한손으로도 잉크충전이 가능하다. 이외 뒤따르는 불편함은 감성으로 승화될 뿐이다.
과거의 만년필은 불편함에서 편함으로 향해있었다. 보다 간편한 충전, 더 많은 잉크주입량이라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개선되어 갔다면 지금의 만년필은 이미 볼펜, 샤프, 디지털 펜이 필기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상 불편함으로 향해 가야한다. 지금의 손글씨는 필수가 아닌 취미의 영역으로 전환되었다. 서예가 그러하듯 만년필도 정통성을 찾아 제품들이 개발된다면 다시한번 만년필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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