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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이 비싼 만년필일수록 무조건 좋은가? (feat.파커 만년필)

Fountain pen/PARKER

by 슈퍼스토어 2023. 6. 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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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쉬운 질문이다. 싸고 좋은건 없고 비쌀수록 좋은건 명확하나 좋아짐의 정도가 가격과 정비례하진 않는다. 간혹 질문을 이렇게 던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성품과 명품 두 제품의 가격이 동일하다면~" 이렇게 말이다.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며 제대로 된 질문이라면 "당신의 재산이 수백억이라면 기성품과 명품 중 무엇을 구입하겠는가?" 이렇게 나와야 말이 되지 않을까? 자본주의 세상에서 어느 공간에 가든 값어치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질 않는다. 남성들의 관심사인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BMW 커뮤니티에서 종종 등장하는 논쟁이 몇가지 있는데 3시리즈 vs 5시리즈, 520i vs 530i 이런 사례들이다. 3시리즈의 운동성과 5시리즈의 공간감을 서로 무엇이 더 좋다 논쟁하는데 가격이 동일하다면이 아니라 돈 있는 사람들은 M3, M5를 구매하는게 현실이다. 백날 논쟁해봤자 결국 본인들 주머니 사정에 맞추어 구매하면 될 일인 것이다. 520i를 선택하는 이들 99%가 천만원의 가격 차이 때문인데 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국내 도로여건에선 530i까지 굳이 필요 없다, 천만원의 옵션차이를 못느끼겠다, 연비는 20i가 더 좋다 등등 결국 본인 예산이 부족한걸 정신승리하는 형태로 주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둘 중에 뭐가 더 좋다고 남들이 선택해줄 수 없다. 본인 예산에 맞게 선택하면 그게 최선의 선택이다.

 

본인에게 재산이 수백억이 있다면 위에서 언급했던 천만원의 가격차이는 크게 신경쓰이지 않을 것이다. 천만원정도 더 내고 더 많은 옵션과 성능을 이용할 수 있다면 굳이 천만원 아껴서 낮은 등급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면 당연히 엔트리급 저렴한 모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산이 부족한 사람에겐 천만원은 크게 다가올 것이고 본인의 기준에 따른 천만원어치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돈을 더 지불할 필요가 없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본인에게 연비가 정말 중요한 요소로 차지하고 있다면 애초에 프리우스같은 모델을 리스트업 했어야 하는거다. 논쟁이 일어나는 케이스들을 한발짝 멀리서 바라보면 결국은 어느 한쪽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말이 되는 선택을 하면 아무런 이슈없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파커 프론티어는 출시당시 가격이 25달러 정도였고 파커 75 스털링 실버 역시 25달러였다. 하지만 프론티어는 90년대, 75는 60년대로 60년대 달러 가치가 90년대 대비 3배정도였다. 그러면 프론티어 대비 3배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오늘날 만년필 가격대는 크게 10만원대, 50만원대, 100만원대로 나뉜다. 10만원대 미만에서는 대부분 스틸닙에 만년필 입문자들을 위한 스펙 정도로 제작된다. 여기서 2~30만원대로 넘어가면 동일한 퀄리티에 금촉이 장착된다. 50만원대로 넘어가야 바디의 품질이 좋아진다. 100만원대부터는 브랜드 가치와 유통가격 거품이 끼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몽블랑, 그라폰파버카스텔, 까렌다쉬 등이 있다. 즉, 어느정도 높은 수준의 완성도와 퀄리티를 느끼려면 50만원대 만년필을 구매하는걸 추천하는데 75의 포지션이 당시 그러했다. 프론티어는 단종시점 5만원이 넘지 않는 가격이며 입문용으로 보면 된다. 결론을 내린다면 오늘날 가격 기준 10배 이상 차이난다. 시장경쟁으로 인해 당시의 만년필 가격에는 거품이 끼지 않았다. 환산된 가치는 3배의 차이지만 오늘날 기준으로 본다면 10배 정도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판단한다.

 

실물 차이는 프론티어는 그립부 미끌림 방지를 위해 표면 가공없는 ABS재질에 코팅제를 뿌려놓았다. 해당 코팅제는 손톱같은 단단한 물질이 닿으면 벗겨질 정도로 약한데 마감제 접착제 도포 없이, 표면가공 없이 뿌려진 채로 제작된게 문제다. 즉 원가절감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2만원 샤프펜슬에도 고무재질을 가공해서 넣는데 프론티어의 품질은 샤프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75의 그립부는 볼록한 홈을 내었고 삼각형 쉐잎에 엄지와 검지가 닿는 부분에 처리되어 있다. 라미의 인체공학 그립인 삼각형 그립은 1960년대 파커75가 먼저 적용한 사실을 볼 수 있다. 라미에는 적용되어 있지 않은 펜촉을 돌릴 수 있는 기능은 개인 필각에 맞게 조절이 가능하다. 두 펜 모두 푸쉬풀 타입의 캡인데 유격은 75가 더 적고 캡과 맞물리는 그립부가 메탈재질이라 플라스틱 그립의 마모로 인한 캡 결속력에 대한 내구성이 더 보장된다. 닙과 피드의 마감 차이도 보이는데 프론티어는 유격이 존재하여 쉽게 빠지고 필기시 펜촉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스틸닙이라 닙은 단단한데 닙 자체 유격이 느껴져 불쾌한 필감이 전해진다. 75는 경성닙이지만 연성닙을 쓰는 듯한 착각을 주는데 빈티지스러운 개성적인 필감은 아니지만 고급스러운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두 펜 모두 메탈재질의 바디지만 크기가 더 작은 75의 무게감이 더 묵직한데 그만큼 프론티어는 내부가 텅텅 비어있다는 뜻이다. 각인의 깊이감 차이도 크고 플라스틱 품질 차이도 직접 느낄 수 있을 정도다. 플라스틱이라고 전부 같은게 아니라 품질이 나뉘는데 예를들면 중국산 제품에 사용되는 플라스틱은 오래 사용하면 삭아서 부스러지는 경우를 봤을 것이다.

 

본인의 주관적 기준과 한정된 예산으로 가격을 3배 혹은 10배 더 주고 이런 차이를 느끼는게 부담이 되거나 가치를 못느끼겠다면 저렴한 모델을 구매하면 되고 굳이 비싼 제품을 구매한 이들에게서 정신승리를 위해 까내릴 필요가 없다. 저렴한 제품으로도 똑같이 잉크 충전되고 똑같이 글씨 쓸 수 있다라는 생각이면 옷, 집, 차도 똑같다고 생각해보길 바란다. 유니클로도 똑같이 옷의 기능을 하고 반지하도 잘 수 있고 밥 해먹을 수 있고 차 역시 모닝도 똑같이 굴러간다. 근데 더 좋은 제품을 쓰고싶어 하는 욕망은 당연한 일이며 모든 물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사항이다.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버는 부자를 동경하지만 그러면서 한편으로 까내리는 대상도 부자들이다. 세상엔 정말 폭넓은 선택지가 있다. 돈이 없어서 필요한걸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드물 정도로 필수재들은 가격대가 천차만별이다. 본인이 선택한 물건에 애정을 갖고 사용하고 갖지 못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그저 동경으로 남겨두고 나중을 기약하면 그게 순리다. 갖지 못한다면 부숴버리겠어 이런 마인드는 성인이라면 이제 좀 버리는게 어떨까.

 

어떤 제품이던 일정 가격대까지 오르는 정도와 품질의 상승폭이 비슷하다가 점차 품질의 상승폭은 줄어들고 가격대만 오르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만년필은 대개 50만원대가 기준이다. 그 이상 비싸지는건 이제 감성의 영역으로 바디에 조각이 들어간다거나 명품 브랜드로 넘어간다거나 한다. 당연히 비싸진 만큼 마감품질도 높아진다. 그렇다고 100만원, 200만원짜리 만년필이 1만원짜리에 비해 100배, 200배의 성능 차이를 보이는건 아니다. 100배 이상 좋아진게 아니니 소비가치가 없다고 말한다면 사실상 돈을 많이 벌 이유가 없지 않을까? 먹는 것도 그냥 편의점 도시락만 먹어도 배가 채워지는 기능은 2~3만원짜리 음식을 먹는 것과 동일하니 더 맛있는 음식을 먹을 필요는 없는게 그의 논리가 아닐까. 다만 기술력이 더 좋아진 현대에서 과거 빈티지 모델에서 느낄 수 없는 장인정신과 원가절감 없이 온갖걸 때려박은 완성도를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도 느낄 수 없는건 아이러니다. 특히 한국시장에선 가격거품이 더욱 심한데 아무래도 비싸면 비쌀수록 더 갖고싶어지는 한국심리를 잘 파악한 마케팅 전략으로 본다. 유통채널이 다양한 제품들은 아무래도 거품이 덜 끼지만 독점유통 계약을 따내어 시장에 들어오는 제품들은 그만큼 유통거품이 가득 끼게 된다. 한국의 명품 브랜드 제품들이 이러한데 현지 가격과 적게는 몇십만원 크게는 몇백만원씩 차이나는 이유다.

 

만년필에선 이태리 브랜드들을 한국의 유통업체가 독점 유통하여 타 브랜드 대비 현지와의 가격차이가 꽤나 있는 편이다. 대부분이 영세한 제조업체들에 직접 컨택하여 독점유통 계약을 해버린 케이스다. 차라리 대기업이 정식수입하여 판매를 하면 현지가격과 비슷한 수준에 판매가 가능한데 소규모 유통업체들이 수입채널을 막아버리면 이러한 부작용이 나게 된다. 유통거품으로 유명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의 경우엔 일본은 엄청 저렴한데 한국만 엄청나게 비싸다는 인식이 강하다. 일본에 제조공장이 있기에 당연한 부분인데 한국에 들어오는 제품들은 전부 프랑스에서 넘어온다. 프랑스부터 한국까지 그리고 각 소매점에 납품되는 과정 중에 단 한번이라도 녹지 않고 재냉동이 되지 않게끔 유지되는데 이를 생각한다면 유통거품이 그렇게 과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반면 일반 공산품들 특히 고가제품에 속하는 사치품들은 다른 이유로 거품이 끼기 때문에 선물용으로 구입하는게 아닌 취미를 즐기기 위해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가고있다. 고급 필기구로써 최근 각광받는 까렌다쉬 역시 몽블랑에 이어 새로운 바통을 이어받아 명품필기구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독점유통이 아니라 가격경쟁으로 인해 현지와 가격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은 편이다. 이러한 시장에서 유통업체들이 인질극을 벌이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정식 A/S다. 해당업체에서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보증서를 보유해야만 정식 A/S를 해주며 병행수입 제품들에 대해선 유상 A/S도 안해주는 경우도 있다. 말 그대로 브랜드 정식 A/S라면 그 나라 본사에 위치한 곳에 해외배송하여 수리하는 것인데 정품이 맞다면 개인이 직접 발송해서 수리 받을 수 있고 유통업체들의 인질은 자체적으로 섭외한 수리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죽 제품의 경우엔 가죽 공방을 섭외하는 경우도 있고 시계 제품은 종로 시계방인 경우도 있다. 물론 유통업체에서 수리인력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지 본사 A/S가 아니라면 도찐개찐이다. 한때 수리를 진행하던 시절엔 국내 대형 문구점에서 고객제품을 나에게 수리 맡기는 경우도 있었다. 즉 부품교체 수준이라면 본사에 부품을 요청해서 수리하며 디테일한 작업이 필요한 경우엔 해당 업체들도 본사에 보내서 수리 받는다. 즉, 국내한정 보증서는 제품이 정품이라면 무의미한 카드다. 거기에 무상 A/S 기준은 지나칠 정도로 까다로워 사실상 대형 브랜드가 아니고선 정식 A/S는 기대하긴 어렵다.

 

과거에 수리장인이라 하면 의사처럼 고장난 제품에 새생명을 불어넣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매뉴얼대로 파손된 부품은 발주넣고 교체하고 갈아 끼우는 형태의 수리밖에 하질 못한다. 수리업체에서 종사하던 수리장인들은 대부분이 퇴사하여 자체적으로 수리소를 여는 경우가 많기에 정식 A/S에 크게 기댈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입소문난 수리업체를 찾아가 맡기는 것이 더 높은 퀄리티로 수리 받을 수 있다. 부품을 교체하는 것은 사실상 고난도 수리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삼성에서도 소비자가 직접 수리를 할 수 있게끔 진행 중에 있을 정도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정리하면 비싸면 무조건 좋은게 맞다. 단, 구매하는 이의 여유가 되는 선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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