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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75 퍼스트이어 1964년식 개체편차 확인하기

Fountain pen/PARKER

by 슈퍼스토어 2023. 8. 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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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만년필의 마감 품질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인 50년대 이후 모델부터 극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대량생산의 시대로 넘어가는 시점과 맞물리는데 그 두가지가 적절하게 섞여 고품질 마감이라는 결과물을 내놓게 된 것이다. 수제품에 대한 해석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데 만년필같은 제품을 100% 수제로 만들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금속 재질이나 플라스틱 재질은 필수적으로 기계공정이 들어갈 수 밖에 없으며 일부 배럴을 목재를 이용하여 직접 깎아 만든 것을 수제 만년필로 칭하거나 한다. 그래서 단순히 손으로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공정 과정에 수작업 비중이 현행 대량생산품에 비해 많이 차지한다면 수제품으로 일컫는 것이다. 종종 언급했던 대량생산과 기계생산에 대한 차이도 이해가 필요한데 러다이트 운동은 19세기에 완전 수작업에서 기계 제조로 넘어가는 것을 반대하여 일어난 현상이 있다. 즉 수공업, 기계공업, 대량생산 3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만년필이란 물건 자체는 기계공업이 필수적이며 수공업의 비중이 점차적으로 줄어들었고 50년대 대량생산 시대를 기점으로 수공업 비중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수공업 비중은 양날의 검인데 비중이 크던 pre war 연식의 제품과 비중이 작은 post war 연식의 제품을 비교하면 전자는 개별품에 대한 완성도는 높지만 다수에 대한 균일함은 떨어지게 된다. 후자는 개별품에 대한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며 다수 균일성은 높다. 여기서 개별 완성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개별품에 대한 완성도는 겉으로 봐서는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 직접 사용해보고 분해해봐야 알 수 있는데 쉽게 말하면 대량생산품은 조립공정에서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 하기 위해 제품의 구조가 단순한 편이다. 소재 역시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ABS재질이 적극적으로 사용되며 원가율을 낮추기 위해 대체제들로 교체된다. 과거엔 하나를 사서 평생 쓰는게 당연했지만 대량생산품들은 트렌드를 공격적으로 바꾸고 내구성 보다는 디자인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만큼 가격이 내려간 이점도 있으나 제품 자체에 대한 완성도가 떨어지는건 사실이다. 예로 몽블랑 149 만년필을 보더라도 빈티지 모델은 수십년이 된 개체도 멀쩡히 사용 가능하지만 현행제품은 구매한지 몇년 되지도 않은 제품도 누수가 발생해서 수리의뢰가 수없이 들어올 정도다. 생산용이성을 우선했을 뿐 완성도, 내구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빈티지 제품의 개체편차는 편차가 좋은 쪽으로 생길 수도 있지만 하자쪽으로 생긴 경우도 있다. QC영역에서 대부분 걸러지는데 오늘날 QC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QC는 공장 자체에서 걸러지지 않고 소비자층에서 확인 후 반품을 결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부동산 마저도 신축을 분양받으면 하자를 직접 점검하고 신청해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수억원을 냈으나 하자는 구매자가 직접 체크해야하고 심지어 마감재, 가구 등은 마감불량은 교체해주지 않고 떼우기 식으로 수리하고 갈 뿐이다. 후분양 제도라면 건설사들은 절대 이런 배짱장사를 하지 못할 것이다.

 

파커75 만년필은 수차례 명작으로 언급해왔는데 그 중 퍼스트이어는 한가지 아쉬운 요소를 제외하곤 마감품질은 후기형보다 훨씬 높은 모습을 보인다. 우선 한가지 아쉬운 요소는 그립부 메탈스레드인데 그립부와 스레드 접착에 구조적 문제로 결속력이 약한 편이다. 빈티지 모델이라 접착제 자체가 약해진 경우엔 오래 사용하지 않아도 스레드가 이탈하는 경우도 있고 제대로 부착되었다고 한들 사용하면서 힘이 가해짐에 따라 스레드가 이탈하게 된다. 퍼스트이어 한자루를 직접 수년간 써온 개체 역시 스레드 접착제가 떨어져버렸다. 이는 스레드와 그립부 사이의 유격이 원인인데 조금 더 밀착되면서 접착을 시켰더라면 고정성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아예 스레드와 그립부를 나사산 결합방식으로 제조하고 접착제까지 도포했다면 수십년을 써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도 이러한 문제가 발생했는지 생산 1년만에 메탈스레드가 제거되고 그립부 자체에 나사산으로 가공하여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근래의 고가 만년필에 사용되는 그립부 메탈스레드가 60년대에도 등장했다는 사실도 놀라운 부분이긴 하다. 현행의 구조는 메탈스레드가 그립부 끝까지 내려오고 그 위에 그립이 덧씌워지는 방식이라 이탈 염려는 제로에 가깝다. 이전에 선보였던 파커51 플라이터 역시 스레드는 플라스틱 재질로 그립부에서 연장되는 방식이었다. 최초 출시 전 75 프로토타입 모델들이 다양하게 제작되어 테스트되었으나 대량생산 과정에서 접착제 사용의 번거로움, 내구성 이슈 등으로 사라진 것이 유력하다.

 

이를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마감이 후기형보다 우수한게 특이점이다. 눈으로 봐서는 큰 차이를 못느끼지만 매번 손에 직접 쥐고 쓸 때마다 차이를 느끼고 있다. 퍼스트이어 모델만 프로토타입 포함하여 10자루 이상 써보고 있는데 항상 같은 경험을 하고있다. 유격감이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펜촉 마감에서 차이가 커서 필감도 구분이 될 정도다. 같은 사이즈의 닙을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90% 이상 퍼스트이어의 필감이 우수하다고 평한다. 개체편차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지만 현시점을 기준으로 10자루 이상 테스트해본 결과다. 박스풀셋의 NOS 컨디션 개체를 구하여 써봐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스레드 디자인만 변경된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공정에 미묘한 변화가 생긴 것으로 느껴진다. 다시 몽블랑 149로 돌아가서 보더라도 66년도와 67년도, 67년식을 기점으로 펜촉 가공방식, 마감이 크게 변화한다. 파커75 역시 같은 현상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입문자에게 퍼스트이어를 추천할 이유는 없다. 구하기도 어렵고 시세도 중기, 후기형보다 몇배 이상 차이난다. 후기형을 쓰더라도 75의 매력은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 다만 아주 후기형은 소네트에서 나타나는 잉크흐름 문제, 닙 건조 문제가 동일하게 나타나므로 중기형까지만을 추천한다. 간혹 빈티지 만년필은 일주일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바로 쓰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푸쉬풀 타입의 캡의 대표적인 단점이다. 그래서 현행 만년필들이 대부분 트위스트 캡 방식으로 출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주 사용하는 이들에겐 트위스트캡은 굉장히 불편하지만 푸쉬풀캡은 아주 실용적이고 편리한 방식이니 본인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뚜껑을 여닫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일주일 뒤 컨버터를 살짝 눌러주고 쓰는 수고 보다 훨씬 낫다는 결론이 나지 않을까.

 

어떤 제품이든 최초기형 모델들은 정성스럽게 출시되었다가 반응이 좋지 않으면 빠르게 단종되고 반응이 좋다면 어느정도 원가절감이 들어가고 대량생산에 용이하게 미묘한 변화가 생기곤 한다. 파커75가 그러한 모델이었던 것이다. 파커의 대표모델인 51도 같은 현상을 보여준다. 51 퍼스트이어는 스피드라인 필러로 끝단 다이아몬드 각인까지 새겨지지만 각인이 사라지고 스피드라인 알루미늄 바는 플라스틱으로 변경된다. 캡의 각인 역시 디자인이 심플해지고 캡탑과 바텀에 들어가는 쥬얼도 캡탑만 남고 하단부는 사라진다. 어떤 모델이든 똑같다. 점차 보급형 느낌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퍼스트이어는 어떤 모델에서든 가장 인기있고 희소하고 높은 값에 거래되는 이유다. 시제품 성향이 강해 문제점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걸 충분히 감안하고 쓸 정도는 된다. 같은 모델이지만 연식에 따라 다른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특이한 물건이다. 단순한 필기구에서 이러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만년필을 20년 가까이 쓰고 있는 지금도 재밌고 신선하다. 그저 빈티지 수준의 완성도 높은 만년필을 현행제품에서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매달 신상 만년필을 한두자루 구입해서 써보지만 아직까지 크게 와닿는 제품은 찾기가 힘들다. 그 중 그나마 손이 가는 제품들은 빈티지 컨셉으로 제작된 레오나르도 등의 일부 이태리 브랜드 뿐이다. 지극히 현행스러운 모델에선 손끝의 짜릿함을 느끼긴 어렵다. 150만원짜리 까렌다쉬 신상 모델을 써봐도 예상했던 필감일 뿐. 플래티넘 신상인 노캡 모델도 결국은 파일럿 캡리스보다 파지감도 좋지 않았다. 그라폰 역시 신상은 색놀이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우려먹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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