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 마이스터스튁의 시초 10x 시리즈는 셀프필링 잉크충전 방식이 아닌 세이프티 방식(아이드로퍼)이었고 이후 출시한 12x 시리즈가 마이스터스튁 시리즈 중 최초로 셀프필링 충전 방식이 적용되어 출시되었다. 만년필의 1차 분기점은 셀프필링의 가능여부인데 그 시기는 1910년도 후반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미국 브랜드들을 필두로 1920년대 초반부터 버튼필러 방식이 적용되었고 이후 유럽제에서도 셀프필링이 적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중 몽블랑은 타 브랜드에 비해 몇년 늦게 전환되었는데 그 이유는 제품 자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셀프필링 방식의 큰 흐름을 보면 최초 버튼필러, 그리고 레버필러로 전환되는데 몽블랑은 그 사이 푸쉬노브 필러 방식을 독창적으로 개발하여 독보적인 개성을 시장에 선보였다. 버튼 필러의 가장 큰 단점은 하단 캡을 열어 버튼을 누르는 방식으로 충전을 하기에 하단 캡 분실, 버튼의 푸쉬감 등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몽블랑의 푸쉬노브 방식은 두가지 문제점을 해소했는데 하단 노브를 열면 노브 자체가 캡이자 버튼으로 분해되지 않고 일체형으로 푸쉬 역시 용이하게 개선하였다. 셀프필링 초창기 시절이라 스포이드 도구없이 충전 가능한 점은 센세이셔널 했으나 충전량이 적은 부분은 아직 해소하지 못하였다. 몽블랑의 푸쉬노브 필러 방식은 과거의 몽블랑은 카피하지 않으며 혁신적인 브랜드라는 상징성을 보여준다. 이후에도 피스톤 필러 방식이 시장이 나왔지만 한층 더 다듬어진 텔레스코픽 필러를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버튼 필러를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하단 캡 안에 숨겨져 있어야 하는 구조이기에 버튼이 굉장히 작은 쇠붙이로 되어 있어 누르기가 굉장히 불편하다. 내부 스프링 장력을 자그마한 버튼으로 밀어내야 하기에 수월하게 충전이 어렵다. 그런 버튼을 하단 캡에 감싸고 분리되지 않게 일체형으로 만든 것은 오늘날 디자인 요소 중 가장 중요한 UX(User Experience) 디자인을 적용한 사례임을 보여준다. 몽블랑은 과거부터 항상 이래왔다. 새로운 트렌드가 나오면 그대로 카피하는게 아니라 다듬고 업그레이드 하여 보다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줘왔다. 정통 마이스터스튁 디자인은 그대로 계승하였고 클래식한 플랫 디자인 역시 유지되었다. 캡, 배럴 등 모든 외관 요소는 하드러버(에보나이트) 재질로 제작되었고 그립부는 곡률을 넣어 그립감을 좋게 만들었다. 14캐럿 금촉은 굉장히 유연하며 극세필이 아니지만 극세필 이상의 사각거림을 느끼게 해준다. 획을 그었을 때 느낌은 거칠지만 거칠지 않았다는 감촉을 남긴다. 필압을 주어 슬릿을 최대치로 벌려도 잉크흐름은 끊김이 없으며 종이를 찢을 듯 싶어도 여전히 거칠지 않았다는 느낌이 남는다. 당시의 4호닙은 만년필 사이즈의 표준이 되었다. 경쟁사 펠리칸도 4호닙이며 당시 독일의 카피브랜드들 역시 표준 4호닙을 달고 제작되었다. 오늘날 라미 사파리, 소네트, m200, 필레아 등등 가장 무난하면서도 편하게 쓸 수 있는 사이즈는 몽블랑의 4호 사이즈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동차로 친다면 스테디셀러 중형세단 소나타, 5시리즈, E클래스 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124G를 보면서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갈 수 있다. 139G를 리뷰하면서 이야기했던 부분인데 G마킹이 Gold냐 Gloss냐에 대한 논쟁을 정리할 수 있다. 여전히 국내외 커뮤니티에서는 Gloss에 대한 의견에 비중이 많아 힘이 실리고 있지만 124에 G마킹이 들어간 개체로 한방에 정리가 된다. Gloss가 아예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전쟁을 치르면서 그 뜻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소들을 본다면 Gold 금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 팩트가 된다. 124는 셀룰로이드 재질로 제작되지 않았으며 gloss 주장은 하드러버에서 셀룰로이드 광택 재질로 바뀌었음을 뜻한다는 주장이므로 적용되지 않는다. G마킹이 30년대 중후반~40년대 후반에서 확인되는 사례를 본다면 당시 금에 대한 이슈가 많았던 것이 맞물려 Gold로 정의하는 것이 맞다고 보여진다. 닙 사이즈 각인인 F 역시 제일 위 획이 긴 것이 확인되었고 폰트에 대한 마감 이슈가 아닌 폰트 디자인의 문제인 것도 정리가 되었다. 세이프티 내부에 들어가는 메커니즘이 사라지면서 무게는 더욱 가벼워졌고 모든 연식 통틀어 가장 가벼운 모델이다. 이로인해 129 모델이 149 60년대의 가벼운 연식과 함께 펜촉의 필감을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모델로 꼽힌다. 펜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힘을 들이지 않고 편하게 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펜촉이 종이에 닿는 질감이 상쇄되므로 필감이 덜 느껴지는 단점도 존재한다. 몽블랑의 2시리즈(푸쉬노브 필러)는 가장 가볍기에 그만큼 필감이 가장 크게 느껴진다.
몽블랑의 모든 모델이 푸쉬노브 필러를 채택하진 않았다. 저가형 모델에선 캡이 분리되는 버튼필러 타입이 적용되었고 40년대 중반까지 생산되었다. 마이스터스튁에만 적용되었고 13x 시리즈는 30년대 후반에 등장하며 그 전까지만 등장한다. 늦었지만 그렇다고 오래 우려먹지 않았고 과감하게 텔레스코픽 필러로 전환하는 모습까지 완벽했던 시절의 몽블랑을 볼 수 있다. 필러 메커니즘 중 가장 짧은 기간만 생산되었지만 내구성과 실용성에서 큰 문제점이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이다. 단순히 텔레스코픽 필러가 부품이 많다고, 기계적인 감성이 있다고 감동 받았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심플함의 극치인 푸쉬노브 연식 124에서 더 큰 감동을 느꼈다. 심플하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들은 전혀 심플하지가 않다. 심플해서 더 이질감이 느껴지는 완성도를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134, 139는 생각할 수 있는, 예상할 수 있는 범위였지만 124는 이럴게 아닌데 싶은 생각이 계속 든다. 그렇다고 상태가 좋지도 않은데 계속해서 손이 간다. 상태가 좋은 개체라면 얼마나 더 매력적일까. 세이프티 모델인 10x 시리즈는 배럴 자체에 잉크가 담기기 때문에 쓰다보면 체온으로 인해 잉크흐름이 들쑥날쑥해지는 경향을 보이지만 124에선 균일하며 13x에서 느끼지 못하는 손아귀의 따듯한 배럴감을 느낄 수 있다. 잉크 충전시의 푸쉬감도 쫄깃하며 펜촉의 질감은 가벼운 무게를 타고 손끝으로 상쇄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된다. 가벼운 무게는 연성감을 느낄 때도 여지없이 메리트를 주는데 활시위를 직접 당기는 듯한 느낌이다. 펜은 가볍지만 펜촉은 가볍지가 않다.
만년필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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