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만년필을 수집하다보면 만년필의 양상이 1960년대 기점으로 크게 바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본래 초기의 볼펜은 생산방식이 어려워 단가가 높아서 만년필 보다 비싼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볼펜의 최초 등장은 1950년대 이전이지만 아직까지는 만년필이 주류 필기구로 자리 잡고 있을 수 있던 것이다. 허나 1954년 파카 조터 볼펜의 등장으로 판세가 완전히 뒤집히게 되는데 조터 모델은 심플하며 대량생산이 가능, 가격대도 저렴해서 더 편리하고 실용적이고 값 싼 볼펜을 사용하기 시작하게 된다.
볼펜의 최초 특허는 1888년에 등록되었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 부터 이어져왔다. 1930년대에도 생산이 되기 시작하다가 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미뤄지고 이후 1940년대에 미국 시장에서 몇몇 브랜드들이 생산을 시작하며 보급형 볼펜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초기 단계라 문제점들이 계속해서 발생하여 오랜기간 생산되지는 못하고 빠르게 중단되었다. 기업들 입장에서 볼펜의 존재는 필기구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템이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연구를 이어갔지만 시장 반응은 문제가 많은 필기구라는 인식이 많아서 아직까지는 차가웠다. 주로 확인되는 문제는 기술력 부족으로 볼펜의 볼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거나 잉크가 계속 흐르는 등 만년필 이하의 모습을 보여줬다.
조터 등장 이전에 프랑스의 Bich라는 회사가 먼저 볼펜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대량생산에 들어갔는데 1950년도다. 1945년 볼펜의 특허를 구매하고 저렴하면서도 훌륭한 품질로 제품을 공급하는데 오늘날 가장 많은 볼펜을 생산하는 기업이 되었다. 4년 뒤인 1954년 파카는 조터 모델을 선보인다. 54년 최초 모델은 나일론 재질로 제작되었고 1955년부터 플라스틱 재질로 바뀌게 된다. 초기형은 선단부에 금속 팁이 없다. 만년필 캡의 하단부 금속 밴드와 동일한 역할을 하는데 캡에 생기는 크랙을 막아준다.
1950년대 당시 파카51의 가격이 20달러가 넘어갔고 조터의 가격은 2달러대였던걸 감안하면 만년필의 몰락은 누구든지 예측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에서야 만년필의 필감이 독특하여 취미로 쓰고있지만 당시엔 필기하는 행위에서 필감의 즐거움을 찾는 개념은 만연하지 않았다. 그저 좀 더 쓰기 쉽고 편한 실용적인 필기구가 더 큰 관심을 받던 시대다.
볼펜의 필감은 70% 이상 리필심이 결정한다. 나머지는 볼펜의 두께감, 무게감 등에서 차이가 난다. 국제호환규격으로 생산하는 리필심이 다양한데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리필심은 파카다. 가격도 무난하고 잉크를 전부 소모하는데까지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가장 문제가 되는 리필심을 꼽아보면 랜드스케이프 모델이다. 독일제 모델인데 필감은 독특하지만 잉크가 빈번하게 끊기는 현상이 있다. 요즘은 개선되었는지 모르겠으나 10여년 전 구매했던 리필심들은 대부분 똑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볼펜의 연식 확인은 이전 포스팅했던 데이트코드를 참고하면 되며 극초기형은 화살모양 클립이 아닌 것만 확인하면 된다. 옛날 모델은 영국제가 많고 요즘은 프랑스에서 생산된다. 영화, 미드 등 다양한 매체에서 등장하는 볼펜이며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판매된 모델이다. 아마 이 볼펜을 한번도 써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일부러 직접 구매하지도 않았는데 내 손을 거쳐간 조터 시리즈만 수십자루다. 조터 샤프도 상당히 품질 좋고 만족스럽게 사용했었다. 요즘의 조터 시리즈는 다양한 컬러로 출시되며 예전에 캘린더 모델도 사용했었는데 완벽하게 날짜 표현이 가능하다.
현존하는 볼펜 중 가장 오랜기간 디자인을 유지하고 계속해서 생산되어 온 볼펜은 조터다. 그만큼 완성도 높고 사용감 편하고 휴대성도 최고다. 이 볼펜의 등장으로 만년필의 입지가 줄어들며 결국은 만년필 고급화 정책까지 이끈 장본인이라 반갑지만은 않지만 어쩌겠는가. 나 역시 출근할 때는 만년필 보다 볼펜을 찾게되는 모습을 보면 볼펜을 인정하게 된다. 영화 조커에 등장한 조터 볼펜을 마지막으로..
만년필에게 조커 같은 등장이었던 조터 볼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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