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의 정점을 향해서 걸어가다 보면 마주치는 브랜드는 몽블랑이다. 최정상 브랜드, 몽블랑의 플래그쉽은 마이스터스튁 149 모델이다. 그 149 모델의 기원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1950년대 셀룰로이드, 실버링 버전의 별명을 가진 극초기형 149 모델들이 나온다. 149면 전부 같은 149인 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셀룰로이드 재질 특성상 량생산이 불가능하며 텔레스코픽 필러 역시 공임이 굉장히 크다.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겠지만 50년대 149를 60년대 이후 레진버전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건 지양하길 바란다. 아주 쉽게 음식과 비교해서 설명하면 이렇다. 패스트푸드 햄버거와 수제버거의 차이라고 생각해보자.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는 패티, 빵 등 각종 재료들을 대량으로 공급 받아 조리가 아닌 데우는 수준에 조립되어 내어진다. 반면 수제버거는 매장을 열기 전 직접 고기를 다지고 밑간하고 빵도 매일 아침에 직접 구워서 내어진다. 같은 햄버거일지라도 둘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며 스스로의 가치판단 기준이 가성비에 몰려 있다면 굳이 만원 넘어가는 수제버거를 먹는걸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70년 가까이 몽블랑을 대표하는 모델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고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인 149의 뿌리를 찾아 또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스터스튁 139 모델을 마주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1차 세계대전 이후, 2차 세계대전 이전 pre 60's 이자 pre war 조건이 성립하는 1938년식 몽블랑 139를 리뷰해보려고 한다. 몽블랑 만년필을 전문적으로 수집하다보면 pre 60's 라는 문구를 종종 접하게 된다. 60년대 이전의 몽블랑 펜들은 그 이후 연식들과는 확연히 다른 퀄리티를 보여주는데 피스톤 필러 사용 이전, 텔레스코픽 필러가 장착되기 때문이다. 재질 역시 사출 성형이 불가한 셀룰로이드가 사용되는데 플라스틱 재질에서는 느끼기 힘든 빈티지 소재의 따스함을 느낄 수도 있다.
더 나아가면 pre war 문구를 보게 될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 연식으로 대부분의 공산품들이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대량생산의 기성품화으로 바뀌어가는데 3~40년대의 장인의 혼이 담기는 물건이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이는 필름카메라 등 다른 빈티지 수집가들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빈티지 물건들을 수집하면서 생산원가 생각 안하고 오로지 최고만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남아있는 연식은 60년도를 기점으로 갈리는 느낌이다.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L(Luxux, Luxury) 139, DRP 652405, c.1938, 셀룰로이드 버전, 실버링, 헤밍웨이 원판 등의 명칭으로 불리우는 모델이다.

캡을 닫은 상태에서도 잉크창이 길게 뻗어있어 잉크잔량 확인이 가능하다. 그립부, 스레드 제외하고 배럴 절반에 걸쳐서 잉크창이 나져있으며 스트라이프 패턴이 인상적이다. 잉크창 컬러는 본래 노란색이며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갈변하게 된다. 간혹 스트라이프 패턴이 없는 개체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오랜 사용으로 패턴이 지워진 것이다. 배럴은 셀룰로이드 재질이 사용되었으며 이외 캡, 노브 등은 하드러버 재질이 사용된다. 따라서 빈티지 소재인 셀룰로이드, 하드러버 두가지를 펜 하나에서 모두 경험해볼 수 있다.
각종 금장 파츠는 도금이 아닌 14k 금이 사용되었으며 실버링 두줄은 스털링실버로 순은 재질이다. 올드 몽블랑에서 볼 수 있는 몽블랑 마운틴 로고는 새겨져있지 않으며 음각 각인은 노브의 모델명, 닙 사이즈 그리고 스레드에 특허 번호가 새겨진다. 노브 스레드에 각인이 새겨져있어 DRP 652405 특허가 텔레스코픽 필러의 특허번호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잉크창 스트라이프 패턴의 제조공정 관련된 특허번호다. 당시 만연한 스트라이프 패턴 생산 방식과는 다른 몽블랑 방식을 고집했던 부분이다.

몽블랑의 플래그쉽 만년필은 오버사이즈다. 특히 현행 149는 보드마카를 쥐고 쓰는 느낌일 정도로 큰데 pre 60's 연식이라면 펜이 작아진다. 현행 149와 50년대 149를 두개 놓고 보여주면 어떤 사람은 149와 146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크기 차이가 나는데 손이 작은 나에겐 50년대 149는 최고의 밸런스를 선사해준다. 더 나아가 139는 50년대 149 보다 더 작아진다. 플래그쉽 펜을 보다 좋은 밸런스로 쓸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큰 메리트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스터스튁 129 모델이 있는데 푸쉬노브 필러로 139에 존재하는 스레드 부위가 없어 사이즈가 더 작아진다. 캡을 끼웠을 때의 밸런스까지 생각한다면 129가 가장 작고 그 이전 세이프티로 넘어가면 캡을 꽂게되는 경우 길이가 지나치게 길어진다.
그런데 왜 129가 아닌 139가 빈티지 만년필의 진정한 성배로 불리우게 됐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129 모델은 푸쉬노브 필링 방식으로 버튼 필러의 개량형이다. 잉크 주입량이 139에 비하면 한없이 적다. 생산원가, 부품수, 공임, 제품의 완성도 등 다양한 요소들을 비교해보면 139가 대부분 우위에 있다. 후기형 139와 비교한다면 129가 필감면에서 더 높은 선호도를 얻을 수 있겠으나 38년식 139라면 펜촉이 129 후기형 것이 장착되기에 논외 대상이다. 몽블랑 129 후기형 펜촉, 14c 250 닙은 방패형 인그레이빙으로 가장 안쪽에 위치한 인그레이빙이 닙의 뿌리까지 이어지지 않고 그립부 내려가기 전에 잘리게 된다. 이후 L139닙으로 바뀌게 되면서 오늘날 149와 동일한 인그레이빙 패턴으로 바뀐다.

14c 250 각인이 닙 아래쪽에 새겨져있고 이외 4810, 로듐 도금쪽의 문양 등은 비슷하다. 가운데 몽블랑 스타로고 디자인 패턴이 L139닙과 다른데 L139는 별 바깥, 원 안쪽에 빗금으로 채워진다. 그리고 하단에 L139 각인이 새겨진다. 모두 쓰리톤, tri-color닙이며 원톤닙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금이 벗겨진 것이다. 14c 250닙에 대해서 설명하면 129 마지막 버전에 장착되던 펜촉이며 1939년도 139 출시를 앞두고 1938년도 pre-order 제품에만 장착되는 유일한 닙이다. 1939년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14c 250닙 장착이 중단되고 재고도 소진되었으며 L139 P, 팔라듐 닙으로 교체된다. 따라서 해당 14c 250닙은 1938년식에 장착되는게 유일하다.
연식을 구분해보면 14c 250, Long window로 시작하여 L139 P, Long window -> L139 Steel, Long window -> L139 Steel, Medium window로 넘어가게 된다. Long window 버전에선 L139 닙이 장착될 수가 없다. 당시 전쟁이 끝나고 금촉 생산이 재개되면서 스틸닙 버전을 갖고있던 사람들이 금촉을 구매해서 업그레이드 했던 기록은 찾을 수 있었는데 이 경우 L139 14c 닙을 장착하게 된다. 또한 오늘날과는 다르게 매장에서 고장 수리나 닙 교체 정도는 매장에서도 가능했다. 2020년 지금도 몽블랑 만년필을 구매하고 닙 사이즈가 마음에 안들면 일정 기간 내에 매장으로 가면 닙 교체를 해주는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는데 당시에도 서비스되었던 부분이다.

몽블랑 136의 경우 클립 버전이 다양한데 넥타이 형태의 클립, 뱀 형태의 클립 등 3가지 정도의 패턴이 있고 전쟁 중에는 139와 마찬가지로 닙이 스틸닙으로 바뀌고 캡 밴드는 아예 사라지고 인그레이빙으로 대체되는 경우도 있었다. 139의 경우 캡 밴드는 사라지지 않았고 14k 금에서 도금 재질로 바뀌게 된다. 전쟁중에 몽블랑의 가장 큰 공장인 함부르크 공장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그 직후 생산된 펜들이 간혹 확인이 되었다. 기이할 정도의 조합인데 판매가 되었던건지 아니면 불량품으로 버려지거나 직원들이 챙겼던 제품인지는 확인이 어렵다.

피드는 초기형 형태로 스키 슬로프 홈이 파여있지 않은 솔리드 형태를 갖고있다. 에보나이트 재질이며 뱃면은 잉크가 묻어나지 않도록 광택이 날 정도로 마감되어 있다. 피드의 옆면과 잉크가 흐르는 스트림 라인쪽은 다공성 마감으로 잉크가 쉽게 건조되지 않고 아스팔트처럼 머금을 수 있게 되어있다. 에보나이트 재질 역시 사출방식이 불가능하고 기계로 깎아내어 제작하게 된다. 그립부 역시 하드러버 재질이 사용되었고 헤밍웨이에선 복각이 되지 않은 부분인데 잘록하고 collar가 없는 형태로 제작되었다. 캡과 결합되는 나사산은 부드럽게 마감되어 길게 쥐고 쓰는 사람도 손에 배김 없이 필기가 가능하다.
닙 유닛은 후기형 139와 다르게 하우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부분이 초기형 139 구분점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현행 149도 마찬가지인데 하우징, 피드, 닙으로 3가지 파츠가 결합하여 전용 툴로 나사산 결합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40년대 이후 139도 동일하지만 Long window 형태의 139는 다르다. 129와 동일한 방식인데 닙과 피드를 붙인 상태에서 그립부 배럴에 슬리브 방식으로 결합된다. 원초적인 만년필 구조로 직관적이다. 해당 방식은 결합 방식에 따라 펜촉의 길이가 쉽게 달라지고 자주 분해결합하면 헐거워져 잉크 흐름에 문제가 발생 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파카 듀오폴드 빅레드(1920's)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캡을 배럴 뒤에 꽂아도 큰 부담없이 사용이 가능하다. 길이만 따지고보면 현행 146 정도로 짧다. 50년대 149를 쓸 때도 후기형 149보다 좋은 밸런스에 감동했는데 139는 그 이상을 보여준다. 오버사이즈 펜이지만 오버사이즈같지 않고 시원한 잉크흐름에 갈증나지 않게끔 공급해주는 방대한 잉크 저장량. 1930년대 디자인된 펜인데도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멋지고 클래식하다는 말을 듣는 펜이다. 가장 중요한 필감에 대해서 언급하면, 라운드 닙인데도 티핑이 아주 얇게 발려 스텁한 필감을 준다. 일단 기본적인 느낌은 부드러운데 부드러우면서도 사각거림이 크게 느껴지고 OB닙의 경우엔 칼날처럼 가공되어 대형닙에 플렉시블 닙인데도 방 안에 사각거림이 가득해진다. 플렉시블 정도 자체는 웻누들 정도로 낭창거리지는 않지만 대형닙이라 작은 필압에도 크게 느껴진다. 정리하면 부드러움과 사각거림이 공존하는 필감인데 이와 비슷한 다른 빈티지 펜들과는 결이 다른 사각거림이 크게 느껴지는 필감이다. 거기에 대형 플렉시블 닙이라 적당한 탄성감이 낚시대를 당기는 손맛을 선사해준다.

2020년 올해 최고의 펜이며 빈티지 만년필을 지금까지 수집하면서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펜이 바로 몽블랑 139 38년식 모델이다. 해당 펜은 유럽 현지 컬렉터이자penboard 설립자인 Tom에게도 확인한 모델이다. Tom은 빈티지 복원가이자 제작자이다. 부모님도 문구점을 운영했으며 이분도 역시 현행 만년필로 시작해 빈티지로 정착했다. 그 역시 38년식 139의 존재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고 해당 펜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는 대화를 나누었다. Tom 뿐만 아니라 독일 지인들에게도 확인했고 pre-order 존재에 대한 부분은 검증된 사실이다.
굳이 내가 꼽는 최고의 빈티지 만년필이 아니라도 전세계 컬렉터들의 로망인 펜으로 이미 증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모든 브랜드, 연식 통틀어 단 한자루의 펜을 고른다면 1938년식 first year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39 만년필이다. 정말 만년필다운 만년필을 쓰는 듯한 필감이며 meisterstuck, masterpiece라는 명칭이 가장 잘 어울리는 펜이다. 걸작 그리고 불후의 명작. 헤밍웨이와 139를 비교하는건 터무니 없다. 독보적이고 압도적이다. Legendary, Historic 수식어가 항상 붙는 이유를 직접 써보고 나서야 당연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그 어떤 빈티지 만년필을 쓰더라도 이 펜 이상의 감동을 느끼긴 어려울 것 같다. 이 펜을 벌써 써버린 것을 후회한다.
| 텔레스코픽 필러 작동 영상 (feat.코르크 씰) (0) | 2020.11.13 |
|---|---|
| 몽블랑 144G 50년대 셀룰로이드 빈티지 만년필 리뷰 (0) | 2020.11.09 |
| 오리지날 몽블랑 역사의 시작, 심플로 세이프티 (0) | 2020.10.22 |
| 몽블랑 121 빈티지 만년필, 18k 금촉이 장착된 럭셔리 입문용 (0) | 2020.10.22 |
| 몽블랑 1937년, 역사상 가장 많은 기술력이 담긴 만년필의 등장 (0) | 2020.10.19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