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0년대 몽블랑의 저가형 모델들 중 굉장히 실용적이고 컴팩트한 라인업 중 하나인 121 모델이다. 거의 이 당시 생산된 저가형 넘버링 시리즈는 디자인 형태가 비슷한데 노블레스만이 예외적이다. 몽블랑의 저가형 브랜드들은 몽블랑 공장에서 자체 생산되지 않고 하청업체를 두고 몽블랑 브랜드만 얹는 형태로 생산, 판매되었는데 과거 서브 브랜드를 아예 따로 두던 마케팅 전략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미 만년필은 도태되었고 몽블랑이라는 타이틀이 없으면 저가형에서 힘을 쓰기 어려웠기 때문에 리스크를 안고 보급형을 판매하지 않았나 싶다. 예상대로 몽블랑의 저가형은 다른 브랜드들에 비하면 전혀 저렴하지 않았고 별 다른 메리트가 없어 오래가지 못하고 단종되어 버렸다. 80년대를 끝으로 몽블랑에선 더 이상 저가형 만년필을 생산하지 않는다.
몽블랑의 고급화 마케팅 전략은 가장 유명한데 그 이유는 유일하게 성공했기 때문이다. 만년필이라는 아이템이 더 이상 필기구로써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고 선물용, 서명용 등에 특화된 명품 악세서리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점차 펜은 오버 사이즈 위주가 되었고 서명에 특화되기 위하여 길들임 과정 없이 두껍고, 부드럽고, 흐름 풍부한 성향을 보이게 된다. 빈티지의 F닙과 현행의 F닙이 2배, 3배 이상 차이 나는 것도 이를 대변해주는 요소 중 하나이다. 만년필을 쓰는 사람은 알겠지만 학교나 회사에 만년필을 들고 가면 관심 받기 정말 좋다. 주변만 돌아봐도 만년필을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사람은 단 1명도 찾아보기 힘들다. 학교 수업 필기 조차도 태블릿 PC로 하는 2020년이라서 만년필에서 실용성을 찾는 것도 무리가 아닐까 싶어지는 요즘이다.
아무튼 요즘은 고급화 마케팅 전략에서도 더 나아가 아예 한정판 마케팅으로 좁혀지게 되었다. 거의 모든 만년필 브랜드가 한정판 마케팅을 가장 내세우고 있을 정도인데 그 마저도 판매율 하락세가 커지고 있다. 하나 둘 만년필 브랜드는 사라져가고 몽블랑 역시 만년필 이외 다른 사업분야를 확장해가고 있다. 다양한 빈티지 아이템들을 수집하면서 겪어온 현상인데 비교하면 지금이 딱 90~00년대 필름카메라가 쳐해있던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한정판 카메라를 출시하고 금을 두르고 티타늄을 두르고, 그러다가 아날로그 필름은 완전히 사라지고 디지털 카메라가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된다. 중요한 서명은 개성이 담긴 필체가 아닌 정자체 서명으로 바뀌었고 필기구 서명에서도 전자서명으로, 디지털 펜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만년필을 필기구로 보는 시각도 사라지는게 아닐까? 과거에 비해 악필이 늘어나고 시침, 분침 시간을 읽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기에 손으로 펜을 쥐고 글씨를 쓸 수 있는 것도 어려운 그런 날이 다가오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이런 만년필의 역사에서 저가형, 보급형 모델은 만년필이라는 아이템이 악세서리가 아닌 필기구로써의 기능을 유지했던 시기를 보여주는 것 같아 항상 반갑다. 만년필을 오랜기간 써오면서 항상 강조했던 부분이 빈티지, 아날로그 감성인데 그런 감성을 고집했던 브랜드들이 망해가는걸 보면 사실 몽블랑에 똑같이 바라는건 무리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몽블랑 L139 14c 250닙 c.1938 클래식 만년필 리뷰 (0) | 2020.10.30 |
---|---|
오리지날 몽블랑 역사의 시작, 심플로 세이프티 (0) | 2020.10.22 |
몽블랑 1937년, 역사상 가장 많은 기술력이 담긴 만년필의 등장 (0) | 2020.10.19 |
[온라인 펜쇼]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 셀룰로이드 빈티지 만년필 (0) | 2020.10.16 |
[온라인 펜쇼] 몽블랑 마스터피스 642N 빈티지 만년필 (0) | 2020.10.14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