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만년필 중 최고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몽블랑 149를 말한다. 1924년부터 시작된 마이스터스튁 시리즈이자 1952년에 디자인이 확립되어 큰 변화없이 2020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명품 만년필이기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고 있다. 이렇듯 디자인이 유지되는 명작은 빈티지 모델들도 인기가 많은데 만년필 에서는 현행 보다 빈티지 연식의 가치가 몇배 이상 차이가 나게된다. 왜 그런 차이가 나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만년필이라는 아이템은 1950년대가 넘어가면서, 저렴한 보급형 볼펜이 등장하면서 판매량은 하락세가 시작된다. 특히나 저가형 만년필의 판매량 감소가 두드러졌는데 그래도 아직까지는 만년필이 중요한 자리의 서명용이나 선물용으로 사랑 받았기에 몽블랑은 아예 저가형 모델들을 단종 시켜버리고 고급화 정책으로 빠르게 전환하게 된다. 타브랜드들은 꾸준히 보급형 만년필을 생산, 판매했으나 예상 매출량에 미치지 못했고 하나둘 도산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 시작되었으며 저가형 뿐만 아니라 럭셔리급 모델들도 기성품화 되어버린게 문제가 되었다.
펜촉은 금을 줄이기 위해 보이지 않는 부분은 비어있고 가공이 어려운 파츠는 다른 대량으로 사출 생산이 가능한 플라스틱으로 변경되었다. 지금은 한정판 위주의 마케팅 전략을 내세우고 기본 라인업은 별다른 변경 포인트도 없고 오히려 내구성이 더 안좋아진 쪽으로 변경이 되는 와중에 가격만 오르고 있다. 현행 몽블랑의 그립부 누수는 고질병이 되어버렸다. 이외에도 조금만 손보면 자잘한 문제들이 사라질 포인트가 많은데 아쉬운 부분이다.
가장 심플하면서 완성도 높은 연식은 60년대 모델이다. 부품 수가 가장 적고 무게도 가장 가볍다. 레진 버전 중에선 만족도가 제일 높았던 연식인데 펜촉의 마감도 훌륭해서 서명용으로 쓸 149가 아닌 필기용으로 써야 할 149라고 말할 수 있다. 단순히 만들기 어렵고 공정이 많다고 해서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여러가지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어 시너지 효과로 인해 그 펜의 감성을 200% 느낄 수 있어야 만년필이라는 아이템으로써 제대로 된 역할을 해주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다. 그런 연식이 바로 50년대 모델이다.
개인적으로 피스톤 필러 메커니즘을 직관적이고 실용적인 필러라고 생각은 하지만 잉크를 주입함에 있어서 재미적인 요소는 살짝 아쉽긴 했다. 이 부분을 텔레스코픽 필러는 한방에 해결해주었는데 잉크를 주입하는 재미, 주입량, 기계적 감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나의 니즈를 완벽히 충족시켜주었다. 수많은 부품으로 이루어진 텔레스코픽 필러는 천천히 돌아가며 스크류가 2개의 파이프와 맞물려 작동되는데 플랜저 필러, 스노클 필러 이상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 잉크를 써도 써도 줄지 않는 엄청난 주입량까지 완벽하다.
배럴은 사출 성형이 불가능한 셀룰로이드 재질인데 사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색이 빠지는 멋을 감상 할 수 있다. 개인취향인 부분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으나 다른 펜들과 똑같지 않은 ,사용함에 따라 나만의 펜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건 굉장한 메리트가 아닐까 싶다. 물론 손에 감기는 감촉도 새롭다.
현행의 오픈닙들은 캡을 열어둔채 몇분이 지나면 펜촉의 잉크가 말라 바로 사용이 어렵기에 사용하지 않을 때는 캡을 닫아두어야 하는데 에보나이트 피드가 장착된 대형 오픈닙 만년필은 캡을 닫아두지 않아도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잉크 건조에 강한데 소장중인 50년대 149 중 개체편차는 존재하지만 대부분 51 후드닙 보다도 잉크 건조에 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단순히 에보나이트라서 좋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에보나이트이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메리트가 분명히 존재한다.
50년대 펜촉에서는 사각거리는 149를 느낄 수 있다. 대형닙일 경우 티핑의 마감이 예리하지 않아 대부분 부드러운 필감을 주는데 빈티지 펜촉의 마감에선 사각거리는 필감을 느낄 수 있다. 부드러운 149 필감만 느껴본 사람에게 사각거리는 149의 필감은 센세이셔널한 경험이었다. 거기에 필압을 주면 플렉시블하게 튕겨져 나오는 탄성감은 서비스. 물론 지금 설명하는 특징들은 수십년간 길들여진 펜이 아닌 상태 좋은 펜일 때의 특징들이다. 그렇기에 펜을 선택하는 여러가지 요소 중 상태만큼은 가장 중요하게 따지게 된다. 빈티지 만년필의 외관은 오히려 지나치게 깨끗하면 복원된 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외관은 복원이 가능하지만 마모된 펜촉은 그 누구도 복원을 할 수 없다.
149는 대형기다. 오버사이즈의 대명사인데 50년대 149는 현행보다 작다. 139는 더 작다. 149를 쓰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말이 있는데 손에 맞는 펜을 쓰는게 아닌 펜에 손을 맞추는 것이라고들 한다. 뭐가 됐든 손이 크지 않은 사람에게 오버사이즈 만년필은 필기용에 적합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실용성 높은 펜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149, m800은 항상 제외하고 말해준다. 139와 50년대 149는 현행 보다 작기에 확실히 손에 더 잘 감기고 편안하다.
이때 당시와 동일한 스펙으로 복각해준다면 바로 매장에 달려가 구매할 것이다. 나 역시 나의 첫 몽블랑은 현행이었고 현행의 짜릿했던 첫경험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지만 항상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빈티지 몽블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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