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1940년대엔 카메라에서도 복잡한 구조가 트렌드였을까? 렌즈를 접어 수납 할 수 있는 폴딩 카메라는 접어두면 주머니에 쏙 들어가 휴대성이 정말 좋다. 렌즈 옆면의 검정색 주름은 앤틱하고 올드한 디자인의 진수를 보여주는데 다이얼을 돌려 와인딩하는 감성은 빈티지의 정수를 보여준다.
당시 만년필에서도 복잡한 필링 메커니즘이 쏟아져 나왔는데 몽블랑에선 푸쉬 노브, 텔레스코픽 필러가 있다. 복잡하지만 복잡함에서 실용성을 느낄 수 있는 역설적인 매력이 재미있다. 이번엔 단순히 만년필 역사가 아닌 1930년대 당시 유럽의 상황을 적어보려한다.
1930년대는 제조업 분야에게 정말 힘든 시기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경제대공황으로 인해 실업률이 엄청났으며 한국의 IMF 시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런데도 독일의 만년필 회사는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각국의 모든 남성들은 전쟁터로 끌려가게 된다. 기존의 일을 하던 남성들의 빈자리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 자리에 여성들이 대체된다. 이를 바탕으로 펠리칸의 제조공장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펜을 조립하고 있는 사진을 이해 할 수 있다. 이런 역사로 인해 펠리칸은 1990년대 근래 까지도 대부분의 직원 성비가 여성이었다.
1차 대전으로 인해 발생한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을 상당히 압박했다. 엄청난 배상금과 프랑스의 압박으로 인하여 독일은 경제적으로 힘들어졌고 인플레이션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독일의 나치정권이 등장하는 시발점이 되었고 민주주의는 무너져버렸다. 1933년 완전고용 정책, 즉 병역의무와 강제노동 정책으로 실업률을 상당히 낮추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러한 정책으로 큰 이득을 보게 된 사업이 바로 자동차 사업이다. 정부의 많은 지원을 받았기에 빠르게 발전 할 수 있었고 이는 후에 독일 명차를 만들어내게 된다.
지금도 몽블랑의 잉크는 오스트리아에서 OEM 생산되는데 과거엔 오스트리아가 독일의 일부였었다. 1차대전때는 동맹국이었으나 2차대전때는 합병된 것이다. 이렇게 독일의 경제는 점차 회복되었고 경제가 회복됨에 따라 군사력도 확보되어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된다. 독일의 첫 공략국가는 폴란드였는데 당시 폴란드는 농업국가로 독일은 총과 탱크를 쐈지만 폴란드는 말을 타고 농기구로 싸우는 장면을 보게된다.
당시 만년필이라는 아이템은 지식인들과 전문직업계층 사이에서의 트렌디한 물건이었고 꾸준한 수요가 있었기에 럭셔리한 모델을 생산, 판매 할 수 있었다. 저가형 브랜드는 럭셔리 마케팅과 차이를 두기 위해 아예 서브브랜드를 두고 스쿨펜 마케팅을 분화해서 진행했던 것이다. 현재 남북이 대치상황인 상태에서 국민들은 긴장감 없이 일상을 살아가듯 당시에도 민간인들은 전쟁이 다른 세상 이야기였을까? 피해를 주는 입장과 받는 입장의 차이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도 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39년도~40년대 중반까지의 만년필은 시장에서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 당시의 상황을 이해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빈티지 만년필의 성배, 몽블랑 139라는 만년필이 나치즘의 산물이라 역사적으로 안타까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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