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특성상 빈티지 모델에 대한 향수가 존재하고 빈티지 수집가들이 많기에 빈티지 복각은 만년필 브랜드들의 꽤나 중요한 숙제다. 각 브랜드마다 전성기 시절의 모델을 주로 복각해내어 출시하는데 사실상 고증을 살려낸 부분은 전무하고 디자인 카피에 불과하다. 그리고 출시하더라도 대부분 한정판 라인업으로 등장하여 당시에 구매하지 않으면 구하기가 어렵다. 전성기 시절의 만년필들을 빈티지가 아닌 새펜으로 대리만족 할 수 있는 점은 정말 고마운 점이다. 그런 빈티지 복각 펜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먼저 파카51 스페셜에디션. 2002년도 출시하였고 역시 한정판 모델이다. 일단 탑, 바텀에 더블 쥬얼이 들어가는 모습은 초창기 파카51을 고증한 모습이다. 캡 배럴의 디자인 패턴은 좀 더 현대적으로 각색한 모습. 여기에 에어로매트릭 필링이 아닌 컨버터 타입으로 내장된다.
사실 빈티지 복각시 가장 중요한 고증 요소는 필링 방식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 경험하지 못할 그 당시의 유일한 필링 시스템을 그대로 넣어주었다면 더 큰 호응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한정판 모델이라 오늘날 비싼 가격대에 거래되고 있다. 컨버터 타입인 줄 모르고 구매했다가 바로 지인에게 선물로 넘겨버렸던 기억이 있다.
워터맨의 역작인 퍼트리션을 복각한 맨100. 그냥 현행 금속재질 만년필과 비슷한 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퍼트리션을 이탈리아 브랜드에서 복각했다면 레버 필러를 달아줬겠지 싶다. 오리지날 퍼트리션과 디자인도 비슷하지도 않아서 복각 펜들 중 가장 만족도가 낮았던 모델이다.
이번엔 펠리칸이다. 100N 시리즈를 복각한 모델로 디자인을 정말 싱크로율 높게 복각해냈다. 물론 필링 시스템도 동일한 피스톤 필러. 펠리칸 m101n 모델로 피드를 제외하곤 거의 동일하다. 이왕 이렇게 퀄리티 높게 복각을 할거였으면 피드까지 에보나이트 재질로 해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배럴 역시 셀룰로이드를 가공한 것이 아닌 그립부, 배럴 파츠 결합 형태다.
그래도 빈티지 100N의 디자인을 좋아하는데 실용성은 현행 수준을 바란다면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디자인만큼은 압도적 1위.
빈티지 복각 중 가장 비싸고 모던 세대 펜들 중 인기모델인 몽블랑 헤밍웨이다. 물론 이러한 이유는 작가 에디션이기 때문 펜의 복각 요소, 필감 등을 본다면 현행 149랑 큰 차이는 없다. 디자인적인 요소는 그대로 복각했다면 메리트가 전혀 없었겠지만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유니크한 모습으로 새롭게 제작한게 포인트다. 필링 시스템만 텔레스코픽 필러였다면 나도 처분하지 않고 소장 컬렉션 중 하나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필러 시스템 등 만년필에 심플한 메커니즘을 추구하는 것은 실용적인 방향이므로 지극히 당연하다. 다만 만년필은 실용성과 거리가 먼 아이템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애초에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기구 자체가 실용적인 아이템이냐고 묻는거 자체가 무의미하다. 모든 필기를 스마트폰, 패드로 하고 심지어 서명까지 디지털 펜으로 하며 전자서명 시스템까지 도입된 세상이다.
위와같은 생각도 하기 이전에 필기구는 볼펜, 샤프 등이 점령한 상태이며 잉크 주입 방식에 편의성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 만년필은 아날로그 감성을 느껴보기 위한 아이템으로 자리를 잡은지 오래고 공식석상에서 서명할 때도 이젠 만년필을 거의 쓰지도 않는다. 시계와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2차대전 이후 기술의 발전으로 쿼츠 시계가 등장하면서 오토매틱 시계의 입지가 줄어들었지만 명품 브랜드들의 기술력을 보여주기 위해 다양한 컴플리케이션 무브먼트를 선보이며 다시금 오토매틱 시계가 하이엔드 워치 시장을 점령하는 오늘날을 볼 수 있다.
몽블랑 헤리티지 1912 만년필이다. 1920년대 당시 심플로 세이프티 필러 모델들을 복각한 펜으로 사실상 세이프티 필러라고 부르면 안되는 펜이다. 세이프티 필러를 재해석했는데 재해석 과정에서 산으로 간 느낌이지만 보다 편리하고 신선하게 만들어냈다. 오리지날 세이프티는 펜촉을 보호하는게 아닌 잉크 누수를 보호하는 안정성을 뜻한다. 애초에 펜촉은 1차적으로 캡이 보호를 하고 있기에 굳이 사용하다가 다시 펜촉을 수납해서 2차적으로 보호할 필요는 없다. 샤프처럼 기본적으로 촉이 노출되어 있는 구조라면 선단 보호 기능이 효율적이다.
헤리티지 1912에선 세이프티 필러를 잉크 건조를 막아주는 기능으로 사용했다. 캡을 닫지 않고 트위스트 방식의 볼펜처럼 사용 할 수 있게끔 펜촉 보호기능으로 의미로 바뀌었다. 펜촉을 수납한 상태에서는 잉크 건조가 적어서 펜촉 배출 후 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잉크 주입은 피스톤 필러 방식으로 오리지날 세이프티 필러 보다 편리하게 변경하였다. 아이드로퍼 방식이 아니기에 잉크 밀폐력을 높이기 위한 캡 내부 메커니즘도 사라졌다. 그립부 나사산이 굳이 collar 부근에 위치할 필요도 없다. 피드는 당연히 플라스틱 재질.
펜촉이 수납되면 펜촉을 보호 할 수 있어 세이프티 필러구나 싶은데 그게 아니다. 물론 헤리티지 모델의 재해석은 실용적이다. 캡을 여닫을 때는 나사산이 한바퀴 이상 돌아가지만 수납된 펜촉을 배출할 때는 반바퀴 정도만 돌려주면 된다. 필링 시스템이 피스톤 필러로 변경되어 펜촉이 수납된 상태에서 펜을 거꾸로 들어도 잉크가 쏟아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재해석된 헤리티지 모델이 1920년대 세이프티 필러를 계승한 것이 아닌 아예 새로운 필링 시스템으로 봐야한다는 점이다.
만년필 재부흥을 성공 시키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외관이 화려한 한정판을 내놓을게 아니라 오토매틱 시계처럼 전성기 시절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집어넣던 기술력을 보여주고 더 불편하고 아날로그틱한 아이템을 만들어내는게 정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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