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이프티 만년필 원리)
세이프티 필러란 아이드로퍼 잉크 필링 방식의 확장된 버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이드로퍼 잉크 주입방식의 명칭 자체는 나중에야 확립됐지만 만년필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역사를 갖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셀프필링 시스템이 아닌 그 이전의 만년필들은 잉크를 주입하기 위해 필기구에 내장된 reservoir(잉크 탱크)에 잉크를 채워넣어 중력으로 인해 필기를 하였기에 잉크 충전 전용 도구, 즉 아이드로퍼가 따로 구성되지 않더라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아이드로퍼 방식은 굉장히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잉크누수에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만년필 배럴 자체에 잉크를 주입하다보니 잉크를 주입한 뒤 결합하는 스레드 부위에서 누수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접속되는 나사산을 일반 만년필들 보다 2배 이상 길게 한다거나 고무 패킹을 넣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나 결합시 씰링 처리를 하지 않으면 완벽하게 누수를 막긴 어렵습니다. 또 다른 단점으로 만년필 사용시 손의 체온으로 인해 내부 공기 팽창이 발생하여 흐름이 과도해지는 현상도 있는데 이는 아이드로퍼 뿐만 아니라 내부에 rubber sac을 사용하지 않는 피스톤 필러 초기형 모델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단점을 알아봤으니 장점을 알아보죠. 아이드로퍼는 배럴 내부 전체에 잉크를 주입하며 셀프필링 메커니즘이 없기에 잉크 주입량이 가장 많습니다. 텔레스코픽 필러 보다도 주입량이 월등하지요. 사실상 이런 장점이 있으나 잉크누수라는 단점이 너무 커서 다른 주입 방식에 비해 메리트는 찾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 몽블랑 헤리티지 1912 만년필)
이런 단점을 개선하고 등장한 주입방식이 바로 세이프티 필링 방식입니다. 대부분 몽블랑 헤리티지 1912 모델이나 보헴 모델을 생각하곤 세이프티? 펜촉을 수납할 수 있어서 안전 기능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계실겁니다. 샤프에서도 선단부에 펜촉을 수납할 수 있는 모델들도 존재하는데 촉을 보호하기 위한 기능이죠. 반면 세이프티 만년필은 그런 의도가 아니랍니다. 애초에 펜촉을 수납한 상태에서 펜을 거꾸로 들면 잉크가 바닥에 쏟아져버립니다.
(↑ 슬리브 배럴 특허)
즉 세이프티 만년필이란 아이드로퍼 방식의 잉크 누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아예 잉크를 주입하는 투입구를 펜촉 부근으로 옮기고 캡을 닫았을 경우 잉크가 새지 않게 하기 위해 펜촉이 배럴 내부로 수납되면서 그 구멍을 슬리브 방식으로 패킹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오늘날의 세이프티 만년필 구조를 갖는 몽블랑 보헴은 카트리지 전용이며 헤리티니 1912 시리즈는 주입 방식이 피스톤 필링입니다. 따라서 펜촉 수납은 1910년대와는 다르게 펜촉 보호를 위해 사용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지요. 이러한 펜들은 캡 내부에 잉크 누출을 막는 파츠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면 1910년대 세이프티 모델들은 캡 내부에 코르크 씰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 코르크는 배럴 내경의 지름과 같으며 캡을 닫으면 밀폐 시키는 구조를 갖습니다.
물론 세이프티 만년필도 단점이 존재합니다. 세이프티 필러는 펜촉을 수납하게 되면 잉크를 주입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잉크가 밀폐되지 않고 앞쪽으로 쏟아지게 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펜의 배럴에 어느쪽이 위쪽이고 아래쪽인지 구분할 수 있는 표기를 하게됩니다. 이 역시 특허로도 등장하지요.
(↑ 워터맨 아이드로퍼 만년필)
또 한가지 세이프티 만년필의 장점은 1900년대 초반의 만년필들은 피드의 구조가 심플해서 후기형 모델들에 비해 잉크를 머금는 양이 상당히 적습니다. 따라서 펜을 쓰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사용하게 되면 잉크가 피드를 타고 내려오는 시간이 걸려 흔들어 쓰게 되는데 이와 관련된 유명한 워터맨 일화도 있지요.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만년필을 꺼내들었는데 나오지 않아 만년필을 흔들다가 잉크가 쏟아져버려 계약을 망친 이야기입니다.
반면 세이프티 만년필은 이런 문제점도 개선되었습니다. 바로 펜촉과 피드 자체가 배럴 내부에 보관되기 때문에 배럴에 차있는 잉크에 항상 잠겨있게 됩니다. 따라서 만년필을 가슴 포켓에 꽂아둔 상태로 오래 있어도 잉크가 바로 써질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오래된 빈티지 만년필들 중 에보나이트 피드 구조가 지나치게 심플한 모델은 이러한 문제가 많은데 세이프티의 이런 바로 쓸 수 있는 보장이 된 만년필은 당시나 지금이나 획기적이라고 생각듭니다.
이렇게 세이프티 만년필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이제 세이프티(safety)가 펜촉을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잉크누수를 안전하게 보장해주는 만년필이란걸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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