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현행끼리 맞붙었을 땐 m800이 처참하게 패했다. 확실히 펠리칸이 고급화 정책을 내세우곤 있지만 몽블랑의 브랜드 가치를 따라오긴 힘든 상황인 것이다. 이번엔 현행이 아닌 빈티지로 두 모델을 비교해보자. 개인적으로 90년대 이후 가장 좋아하는 00년식 146과 87년식 m800을 놓고 비교해보려 한다. 참고로 난 몽블랑 매니아고 146은 원톤 보다는 8~90년도 과도기나 00년식을 선호한다. m800이 플라스틱 피드라 00년식을 선택했다.
1. 브랜드 가치/가격
먼저 브랜드 가치를 따져보자. 거창하게 할 필요 없이 수집 가치로 생각해보자. 일단 몽블랑의 구매 가격은 시중가 90만원에 육박한다. 중고 시세는 40~50만원 정도에 형성되어 있는데 내가 처음 샀을 때는 20~25만원 정도가 적정 시세였다. 확실히 다른 명품과 달리 수입하면서 거품이 많이 끼는 브랜드라서 중고 가격이 확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중고시세는 면세점 기준으로 매겨지는 추세이기에 불가피하다. 그래도 80년대 원톤닙만 아니라면 가지고만 있어도 시세는 계속 올라가는 모델이다.
펠리칸은 소비자가격 75만원이다. 역시 수입사가 넘어가서 그런지 거품이 더 껴버렸다. 그래도 가성비로 밀고가던 모델인데 몽블랑 잡겠다고 실패한 고급화 정책을 고집중이다. 하지만 이번에 비교할 모델은 현행이 아닌 87년식 빈티지 m800이다. 일단 87년식은 구하기가 어렵다. 매물도 없고 특히나 조합품이 아닌 제치의 개체는 사실상 찾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아래 사진은 운 좋게 유럽 펜쇼에서 구매한 제치의 모델이니 감상해보길 바란다. 가격은 뭐 거의 부르는게 값. 이베이에선 일본 셀러가 한화 약 401만원에 판매중이다.
- 펠리칸 m800 14c 승
2. 디자인
각진 클래식한 펠리칸이냐 유선형의 정통 몽블랑이냐의 선택이다. 개인적으로는 각진 클래식한 느낌을 좋아해서 펠리칸 100 시리즈도 100N보다 100을 선호하긴 한다. 근데 사용감은 100N이 좋아서 불가피하게 100N을 쓰고는 있지만 m800과 146을 비교한다면.. 그래도 몽블랑 매니아인지라 화이트 스타는 포기하지 못하겠다. 특히 같은 레진 모델이라도 몽블랑의 피아노 블랙 피니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 몽블랑 146 승
3. 실용성
만년필에 실용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부분이지만 그래도 일단 사람이 사용은 해야하니 비교해보자. 일단 m800이나 146이나 모두 피스톤 필러 방식으로 잉크 저장량이 상당하다. 하지만 면밀하게 따져보면 146의 저장량이 더 크다. 펠리칸 m800은 약 1.3cc정도 주입되고 146은 1.5cc정도 주입된다. 다만 배럴 내부에 잉크가 굳었을 경우 내구성은 m800이 우위다. 피스톤 로드의 두께부터 달라 m800이 146보다 견고하다.
캡을 뒤에 꽂고 사용한다는 가정 하에 캡의 무게감은 146이 더 무거워서 뒤로 쏠리는 경향이 있지만 m800은 146보다 덜하다. 다만 바디만의 무게는 m800이 더 무겁다. 특히나 필러의 금속 때문에 무게가 뒤쪽으로 쏠리는 경향도 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이 고시용 만년필로 146 보다 m800을 선호하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실용성면에서 지금까지 다룬 내용을 따지면 146이 모두 우위다. 하지만 이를 다 상쇄하는 펜촉이 있다. 몽블랑 EF는 우리가 아는 EF닙이 아니다. 타사 F닙 이상인데 빈티지일 경우 그나마 조금 얇은 편이다. 현행 m800도 몽블랑 보다는 원래 덜했는데 최근 제품들은 몽블랑만큼 엄청 두껍다. 뭉툭한 티핑은 부드러운 필감을 만들고 흐름을 늘려 서명용에 맞춰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펠리칸도 역시 빈티지는 세필이다. 몽블랑 보다도 세필이다.
- 몽블랑 146 승
4. 필감
사실 00년식 146은 추억 버프가 가미되어 있다. 내가 생전 처음으로 썼던 몽블랑이 00년식이기 때문이다. 각진 티핑이 종이 달라붙어 사각거림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묘한 필감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m800 14c를 쓰고선 가치관이 흔들렸다. 14c, 특히 87년식 초창기 펜촉은 필감이 남다르다. 마지막에 따로 설명하겠다.
- 펠리칸 m800 14c 승
5. 감성
일단 플라스틱 피드가 쓰였으면 내 타이트한 기준으로 따지면 빈티지 감성을 느낄 수가 없다. 따라서 빈티지 감성이 아닌 시대 감성을 비교하는 점 양해 부탁한다. 이건 압도적으로 87년식 펠리칸이 승리할 수 밖에 없다. 1987년도 최초로 m800을 런칭했고 파카, 몽블랑을 제치고 최고의 펜으로 등극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펠리칸이 정점에 섰던 유일한 시기가 바로 1980년대 후반이다. 그런 시기 중에서도 가장 최초로 생산된 특징을 갖고있는 m800 first year 제품은 펠리칸 매니아들의 로망이다.
- 펠리칸 m800 14c 승
5. 내구성
내구성은 실용성에서도 언급했듯이 피스톤 필러의 내구성은 펠리칸이 우위다. 확실히 수년간 실사용하면서 문제 없이 신뢰있게 작동한다. 물론 몽블랑도 관리만 잘해준다면 오래 쓸 수 있지만 관리를 해준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펠리칸은 딱히 관리 없이도 오래 쓴다.
- 펠리칸 m800 14c 승
6. 수리 용이성
수리 용이성은 펠리칸을 이길 브랜드가 없었다. 펜촉이나 노브나 모든 부품을 도구 없이 맨손으로 분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는 1929년 펠리칸 100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인데 중간에 몽블랑처럼 전용 렌치가 도입되기는 했지만 다시금 도구 없이 간단하게 분해가 되는 방식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게 수집가들 사이에선 문제가 된다.
펜촉 교체가 쉬운만큼 분해 흔적을 찾기 쉽지 않고 1987년식 경우 조합품들이 너무 많다. 제치의 모델을 구하기가 여간 쉬운게 아니다. 반면 몽블랑은 모든 부품이 분해하는데 전용 툴이 필요하다. 캡탑도 필요하고 닙도 필요하고 닙파츠 분해 후 하우징과 피드를 분해하는데도 도구가 필요하다. 필러 역시 전용 렌치가 필요하고 빈티지 경우 피스톤 로드를 분해하는 도구도 필요하다. 어려운만큼 제 치의 개체들이 많다. 또한 한번 분해하면 분해 흔적이 남을 수 밖에 없는 구조라서 조합품 구별도 쉽다. 하지만 빈티지 수집적 접근이 아니니 펠리칸 승리다.
- 펠리칸 m800 14c 승
7. 무게감
무게감 역시 실용성 항목에서 다뤘는데 개인적 취향은 가벼운 만년필을 선호해서 146의 손을 들어준다. 확실히 만년필은 무거우면 펜 자체의 필감을 무게가 뺏어가서 오롯이 느끼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펠리칸 100이나 몽 149 60년대를 쓸 때의 필감은 따라 올 수 있는 만년필이 전무하다.
- 몽블랑 146 승
8. 휴대성
휴대성은 그나마 캡을 닫았을 때 펠리칸이 더 작아서 펠리칸 승리. 하지만 포켓에 넣을 때 캡탑의 길이를 빼면 동일해서 의미가 없다.
- 펠리칸 m800 14c 승
아까 말하다 말았던 필감에 대해서 정리를 해본다. 좌측은 몽블랑 146 00년식, 우측은 펠리칸 m800 14c 펜촉이다. 둘 모두 필압을 많이 주지 않은 상태에서 쓴 글자이며 잉크는 좌측은 이로시주쿠 죽탄, 우측은 월야다.
위 사진은 동일한 레인지에서 필압을 주었으며 아래로 내리는 획의 경우 필감을 더 느끼기 위해 당겨쓰는 습관이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비교해보자.
확실히 동일한 F닙인데도 획의 variation range가 차이가 보인다. 잉크 흐름 역시 펠리칸이 몽 보다도 절제된 느낌이고 특히나 받침은 당겨 썼을 때 '펠' 의 'ㄹ'을 보면 필감을 어느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비해 '몽'의 'ㅇ'은 동일하게 당겨 썼지만 획의 variation 없이 일정한 편이다. 필기할 때의 손맛이 극명하게 갈린다. 몽 146으론 필압을 주더라도 저 조그만 칸에서 펠리칸 만큼의 획을 그릴 수가 없다.
14c 펜촉의 필감을 묘사하면 이러하다. 얇디 얇은 티핑은 사뿐하게 종이 위에 얹혀진다. '사뿐'의 표현이 가장 잘 들어맞는다. 그리곤 부드럽게 밀려가는 획과 당겨 쓸 때의 탄성감은 아주 부드러운 복숭아를 만지는 듯한 느낌이다. 확실히 87년식 14c 펜촉은 다르다. 조금 다른게 아니라, 확실하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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