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리칸 판매량을 본다면 2000년대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m200이다. m400과 크기는 동일하지만 스틸닙에 배럴은 일반 플라스틱 재질이 사용되어 보급형 m400으로 볼 수 있다. 당시엔 10만원도 안넘는 가격에 m400 금촉과 호환되어 금촉만 따로 구해 사용하는 것이 트렌드이기도 했다. m200, 400 사이즈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데에는 깊은 역사가 있다. 400 시리즈는 100n의 단종 이후 1950년대에 처음 선보였는데 기간을 본다면 현재까지 70년 가까운 세월동안 생산되어 왔다고 볼 수 있다. 모델명 자체는 달라졌을지언정 기반은 동일하다. 400, 400N, 400NN, m400으로 모델명과 디자인이 조금씩 바뀌었고 50년대 400과 현행 m400이 가장 유사성이 높다. 오히려 6~70년대 모델 보다도 50년대 초기형이 비슷한 신기한 모습이다. 간략하게 설명한다면 미국에서 40년대 들어서면서 유선형 디자인 붐이 일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도 이러한 트렌드를 따라 유선형 디자인 모델들을 선보이는데 펠리칸은 다소 늦은 50년대 중반이 넘어서야 출시하게 된 것이다.
결국 디자인 트렌드는 돌고 돌아 펠리칸은 클래식한 플랫 디자인으로 선회하게 된다. 그것이 m 시리즈의 출발이다. 위 사진에서 확인이 가능한데 첫번째 모델은 m400 구형이고 아래 사진의 모델은 400NN 모델이다. 400NN 모델을 보면 약간 기형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본래 플랫한 디자인을 어거지로 잡아 당긴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유선형 타입은 아무래도 클립, 캡탑 구조 자체가 달라져야하는데 기본 틀을 유지한채 유선형 디자인으로 변형 시키다보니 저러한 사태가 벌어진 것으로 보여진다. 400NN 자체는 60년대 단종되었지만 유선형 디자인은 70년대까지 유지되었고 80년대 들어서면서, m 시리즈의 등장과 함께 펠리칸에서 사라지게 된다. 플랫한 디자인은 펠리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고 이런 클래식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매니아층에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m 시리즈 플래그쉽이던 m800은 당시 전세계 판매량 1위였던 몽블랑까지도 넘어서게 된다.
400 사이즈는 1950년대부터 꾸준히 베스트셀러를 담당했고 당시의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모델을 담당했다. 과거 플래그쉽 모델들이던 100, 100n 역시 400과 길이가 비슷하다. 경쟁사인 몽블랑 역시 비슷한 사이즈 모델들이 기본적이었는데 4호닙이 장착된 모델들이다. 오늘날엔 다소 본인들의 기준보다 더 큰 오버사이즈가 트렌드이기에 400 사이즈가 외면 받고있다. 심지어 2000년대 당시 고시용 만년필로도 400 보다 800의 인기가 더 높았을 정도인데 고시용이 아닌 과시용으로 변질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잉크충전량이 m800이 훨씬 많아 800을 추천하는 이들도 있는데 안타깝지만 m400의 충전량은 1.8ml, m800의 충전량은 2ml로 0.2ml밖에 차이나질 않는다. 결국 펜의 선택에 있어서 손의 크기가 가장 핵심적인데 한국인 평균이라면 400이 오히려 장시간 필기시 적당하다. 펜이 클수록 무게감으로 인해 손의 피로도를 덜어준다고도 하지만 400으로도 충분히 필압없이 글을 쓸 수 있고 14k, 18k 펜촉 구분은 둘다 극경성닙이라 일반적인 사용자라면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참고로 유럽에선 800 판매량이 높고 일본에선 400 판매량이 높고 한국에선 800의 판매량이 높았다.
앞서 말했듯이 m400은 금촉에 셀룰로이드 배럴이 들어가기에 가격대가 배 이상 높아지므로 차선책인 m200이라는 옵션도 주어진다. m200은 낮은 스펙으로 동일한 크기, 비슷한 디자인으로 사용이 가능하며 잉크충전량은 동일하다. 입문용이나 실사용으로 이만한 만년필이 없다고 본다. 과거 소비자가 10만원이 넘지 않던 시절에는 거의 유일한 선택옵션이었으나 요즘은 거진 20만원대 육박하여 대안들이 많아졌다. 트위스트 캡으로 잉크건조가 거의 없고 피스톤필러 방식으로 방대한 잉크충전량, 닙 섹션 분해는 툴 없이 맨손으로도 가능하여 쉽게 펜촉 교체, 세척이 용이했으며 내구성도 튼튼하다. 특히나 배럴에 잉크창이 있는 만년필들은 종종 누수가 발생하곤 하는데 펠리칸은 잉크창 누수가 거의 없는 편이다. 대신 필러쪽 누수가 종종 발견되는데 배럴 자체가 두껍고 튼튼해서 간단한 실링 정도로 수리가 된다.
빈티지 모델들도 튼튼해서 오늘날까지 멀쩡한 개체들이 굉장히 많고 수리도 용이해서 거래량이 활발하다. 400, 400N, 400NN 기본적으론 동일하나 400N부터 필러 구조가 미세하게 달라진다. 크랙으로 인한 누수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필러 스레드쪽으로 잉크가 넘어오는 개체들이라 필러 따고 실링 작업해주면 간단하게 수리된다. 필러가 나사산으로 결합되는 것은 안전하게 분해가 되지만 스냅방식으로 결합되는 연식들은 초음파세척기로 굳은 잉크를 완전히 녹인 후 전용툴을 이용하여 분해해주면 된다. 닙 섹션은 빈티지도 동일하게 손으로 돌려 분해가 가능하다. 다만 에보나이트 피드의 형태가 특이한데 피드 날이 세로로 얇게 세워져 있어 손으로 돌릴 시 지나치게 힘을 가하게 되면 부러지게 된다. 피드의 뿌리부분을 안전하게 쥐고 돌리며 힘을 어느정도 주어도 돌아가지 않은 경우엔 잉크가 굳어있는 것이니 최대한 녹여주고 그래도 안돌아간다면 열처리 후 분해하면 된다.
굉장히 저렴하고 접근성도 좋으면서 실용성 높고 내구성 높고 관리도 쉬운 만년필을 꼽으라면 400 모델들이다. 특정 짓는다면 개인적으로는 400, m400을 꼽으며 현행도 좋다. 물론 m200도 추천하며 휴대하며 막 굴릴 용도라면 무조건 m200이다. m200만 10자루 이상 써왔으며 특히나 학창 시절에 가장 오랫동안 즐겨 사용했던 모델이 바로 m200이다. 공부할 때 m800을 쓴다? 솔직히 공부를 하는건지 손글씨 취미를 즐기는건지 모르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운전면허 시험을 아반떼로 하지 그랜져로 하지 않듯이 모든 일에는 적절한 도구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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