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뷰 모델의 실패는 예견되었다. 다른 메이저 브랜드들은 배럴에 레버를 없애고 있는 와중에 레버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디자인은 시장흐름에 역행하는 행태였다. 앞선 모델이었던 패트리션도 트렌드를 따르지 못한 결과로 참패했는데 잉크뷰도 같은 결과를 맞이했다. Wahl, 파커, 쉐퍼는 전반적인 디자인을 유선형으로 채택하기 시작했고 잉크충전 방식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하기 시작했지만 워터맨의 신제품엔 여전히 계속해서 레버필러만이 들어갔다. 플래그쉽이었던 패트리션의 후속작 헌드레드 이어 모델도 워터맨 특유의 곤조를 벗어던지지 못하고 레버필러로 출시하게 된다. 워터맨의 전성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헌드레드 이어 모델은 이름처럼 100년간 품질을 보증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만년필에 평생보증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쉐퍼의 화이트 닷이 대표적인 상징인데 쉐퍼의 하얀색 점이 닳아 사라질 때 까지 제품을 보증해준다는 뜻이다. 파격적인 조건으로 제품을 판매했지만 2차대전으로 인해 모든 회사들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시장 속에서 워터맨은 고급모델을, 구형 디자인으로 고집했고 유럽 각국 부터 시작하여 폐점하기 시작했다. 1954년 미국 공장 마저도 폐쇄하며 마무리된다.
워터맨 역사 속에서 인정 받는 명작은 대표적으로 리플, 패트리션, 헌드레드이어 세가지가 꼽히지만 개인적으로 헌드레드이어는 시대적 트렌드를 너무 반영하지 못한 모델이라 역사성이 다소 떨어져 추천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플래티넘 게더드의 주름진 배럴처럼 가공되어 있는데 게더드는 주름이 곡률을 가져 손에 부드럽게 감기지만 헌드레드이어 모델은 매끈한 표면에 홈을 각지게 파낸 것 처럼 가공되어 손에 쥐었을 때 이질감이 느껴진다. 약간 비어있는 공간감이 느껴지고 주름이 각져있기에 이러한 느낌을 주는데 게더드 보다 못하며 40년대 제품임에도 레버필러가 박혀있는 것은 시대반영도 보여주지 못한다. 차라리 한단계 아래 모델인 513, 515 모델을 구매해서 써보는게 나은 선택이며 주름의 유무만 다를 뿐 거의 동일한 펜이다. 펜촉 자체는 다른데 No.94 모델은 헌드레드이어와 동일한 펜촉이 장착되므로 필감으로써 대체품이 될 수 있다. 정리하면 No.94 모델이 펜촉은 동일하여 필감 공유가 가능하고 전반적인 다자인, 가성비로 간접체험 하고 싶다면 5xx 모델을 선택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515 모델을 추천한다.
pre war, post war 연식을 구분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워터맨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2차 대전 이전의 모델들에서 워터맨 최전성기 시절의 걸작들을 만나볼 수 있고 이후엔 아예 회사 자체가 망해버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워터맨 만년필이 생산은 되고 있지만 1954년을 기점으로 정통성은 끝나버렸다고 보면 된다. 거의 대부분의 만년필 브랜드들의 역사가 그러하다. pre war 연식까지가 최전성기이며 그 이후로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런 역사적 흐름을 벗어난 유일한 브랜드가 바로 몽블랑이며 그외 나머지 브랜드들에서 몽블랑 수준의 감동을 느끼기 위해선 pre war 연식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만년필 역사를 시작했고 시장을 이끌던 워터맨은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망해버렸다. 빈티지 만년필을 수집한다면 pre war 연식으로 넘어가는 것은 필수적이다. post war 연식이 감성의 영역라면 pre war 연식은 역사의 직관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만년필은 단순한 필기구 이상의 역사적 시대흐름을 반영한 도구이다. 어떠한 연식의 모델로써 그 시대의 시장 트렌드를 읽을 수 있고 그 시장 트렌드는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다. 만년필에 100년, 평생 보증이 적용된 시점은 1930년대 후반이다. 가장 완성도 높고 최고수준의 만년필을 쓰고 싶다면 1930년대 중후반의 제품들을 찾아보면 되는 해답을 얻게 된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후반, 2000년대 모든 연식의 만년필들을 수백자루 넘게 써보고 있지만 1930년대의 만년필의 감동을 줄 수 있는 만년필은 30년대 제품들이 유일하다. 40년대 모델에서도 느끼기 어렵고 오히려 더 거슬러 올라간 20년대, 1910년대 모델에서도 느끼기 어렵다. 공산품이 예술작품으로써 느껴지는 순간은 크게 두가지인데 디자인이 유니크하고 온갖 귀금속을 때려박은 것과 극한의 완성도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30년대 모델들은 수공이 적절히 섞인 공산품들의 최절정 완성도를 선사한다. 이 때 생산된 만년필들은 잘 관리된 개체라면 고장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실사용량이 가장 많은데도 멀쩡히 작동하며 필감 또한 가장 만족스럽다. 어떠한 제품이든 그 제품의 보증기간을 보면 그 제품의 완성도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요즘 제품들은 보증기간이 대부분 1년 길어야 2년이다. 수천만원 시계도 대부분 2년 길어야 5년, 억이 넘는 자동차도 3년 5년이다. 제품의 내구성, 완성도는 과거를 절대 넘어설 수 없다. 기술의 차이로 편의성이 극대화 되었지만 내구성은 절대 그만큼 뒷받쳐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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