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금 핫하다는 만년필 브랜드는 레오나르도, 디플로마트 정도가 인기를 끌고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델타, 오로라 등 이탈리아 수제 만년필들이 트렌드였고 그 이전 1980~90년대에는 펠리칸, 파카로 정리 할 수 있다. 1960~70년대에는 50년대 이후 일본과 서구권 만년필들이 국내 유입되어 자국 브랜드들이 카피하여 보급형 만년필을 생산하였지만 만년필 보다는 볼펜 사용량이 더 많았다. 1950년대 관공서를 보더라도 펜대와 잉크를 사용했을 정도이며 한국의 대표 필기구인 모나미 볼펜은 1963년도에 개발완료되었다. 1950년대에는 파카51이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쳤고 한국전쟁 중에 미군을 통해 유입이 되곤 했다. 2차 대전 이전에는 대량생산 이전의 시절이라 사실상 어느 브랜드 제품을 쓴다 한들 품질 이슈가 크게 없었다. 원가절감은 커녕 오히려 기술력 과시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 까지 가득찬 디테일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기별 트렌디한 브랜드들 옆에 우직하고 꾸준하게 기반을 다지는 브랜드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몽블랑이다. 1906년에 뿌리가 시작되었고 1910년대 스타로고 몽블랑 브랜드가 론칭되었다. 몽블랑이라는 이름, 브랜드 로고도 최상의 품질을 추구한다는 슬로건을 담고 있는데 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몽블랑의 가장 최상위 라인업인 마이스터스튁은 1920년대 처음 등장했으며 해당 라인업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엔 다소 충격적인 방법으로 만년필의 품질을 광고했는데 날고있는 비행기에서 만년필을 집어 던져도 깨지지 않는 내구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몽블랑 역시 광고에 집중했는데 독일의 차에 대형 만년필을 싣는 경우도 있었고 비행기에 광고카피를 그려넣는 경우도 있었다. 최고수준의 품질 역시 인정받아 유럽각국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히틀러의 만행에도 불매운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을 정도였다. 몽블랑의 다양한 마이스터스튁 모델 중 한자루를 꼽으라면 149인데 149 숫자에 각각 숨은 의미가 있다. 뒷자리부터 살펴보면 9는 크게 xx4, xx6, xx9로 나뉘는데 펜촉의 크기를 뜻한다. 4호닙, 6호닙, 9호닙이며 9호가 가장 큰 사이즈의 펜촉이 장착된다. 가운데 숫자는 x0x, x2x, x3x, x4x로 크게 나뉘는데 잉크충전 방식을 뜻한다. 0은 세이프티 충전방식, 2는 푸쉬노브 필러 방식, 3은 텔레스코픽 방식, 4는 피스톤필러 방식이다. 즉 x49까지만 본다면 피스톤필러 방식으로 충전하며 9호닙이 장착된 만년필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앞 숫자는 모델 라인업을 뜻한다. 1은 최상위 라인인 마이스터스튁이며 2, 3 등 숫자가 커질수록 급이 내려가 가격대도 낮아진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고급화정책으로 1 밑의 모델들은 전부 단종된다.
즉 몽블랑 149는 1(마이스터스튁 라인)4(피스톤필러 충전방식)9(9호닙 대형닙)의 뜻을 갖는다. 간혹 149 중 149G 모델명이 존재하는데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이 가능하다.
몽블랑 149는 가장 처음 등장한 시기가 1940년대 말 경이며 그 이전 109, 129 모델 등도 존재하지만 가장 오늘날 149의 틀을 만들어낸 제품은 139로 볼 수 있다. 시가형 타입으로 굵직하고 금장과 블랙의 조화로 고급스러움을 자아냈고 방대한 잉크충전량까지 겸비했다. 플래그쉽 모델이며 가장 고가의 모델이긴 하나 크기가 일반적인 필기구에 비해 지나치게 거대한게 장점이자 단점으로 작용한다. 워낙 오랜 역사가 있는 모델이기에 다양한 연식별 특징이 나타나는데 그 중 가장 장인정신이 깃들고 원가절감 없이 모든 기술력을 때려박은 연식을 고르라면 1930년대 말~40년대 말 사이에 생산된 139와 149 실버링 모델을 꼽는다. 과거 현재 통틀어 가장 많은 부품이 들어가고 한정판 제외 가장 생산원가가 높은 제품이다. 쥐어보고 사용해보면 이건 단순한 필기구 이상의 느낌을 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독일스럽다는게 뭔지 알게 될 것이다.
다만 개체수가 지나치게 적고 유지관리가 어렵기에 무난한 149 연식을 추천한다면 80년대 중반 이전의 것을 고르면 된다. 80년대가 넘어가면서 몽블랑은 고급화정책을 시작했지만 이와 동시에 원가절감된 부품까지 들어가게 되기에 만족도가 크게 떨어지게 된다. 고급화 정책과 원가절감이라는 반대되는 요소가 동시에 적용되는 굉장히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게 미스테리다. 오늘날 광고에서는 펜촉 장인이 수작업하여 제작된다고 하지만 사실상 닙 연마를 기계가 하고 검수만 직원이 하는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물건을 사더라도 기능적인 부분만 신경쓴게 아니라 예술적인 요소가 가미된걸 선호한다. 무언가를 만들때 단순히 필기구라도 예술적 혼이 들어간다면 그 자체로써 작품이 되고 가치가 올라간다고 본다. 값싼 소모품이 아니라 작품으로써 대하면 더 애착을 갖고 쓸 수 있고 지루함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본인이 아끼는 물건 중 입 밖으로 "예술이네" 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 있는지 확인해보길 바란다. 물건을 만드는 이의 혼이 담겨있다면 그 물건은 예술이 된다. 혼이 빠지고 돈을 좇는다면 예술로써의 가치를 잃어버린 흔한 공산품으로 밖에 남지 못한다. 쿼츠시계와 스마트폰 시계, 스마트 워치가 시계시장을 무너트렸지만 오토매틱 시계가 다시 남자들 손목 위에 오를 수 있는 이유는 장인정신과 혼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고 시계를 예술로 다시금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이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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