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오블리크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현행이 아닌 빈티지 펜촉의 경우 B닙 이상으로 넘어가면 스텁닙으로 보면 되는데 현행은 B닙도 라운드닙으로 처리되는 반면 빈티지 닙들은 B로 넘어가면 양 끝 테두리가 각진 형태의 스텁닙 형태로 마감된다. 간혹 B 두께의 라운드닙을 보고는 빈티지 B도 스텁하지 않은게 있다는 의견이 있으나 그것은 B가 아닌 M 윗급의 라운드 기반인 MM닙이다. B 계열은 스텁한 형태를 취하는 것이 정석이다. 따라서 필감 자체가 완벽히 달라지는데 라운드닙의 태필은 부드러움이 증폭되지만 B 계열 닙은 종이에 쩍 달라붙는 듯한 쫀득한 필감을 선사한다. 물론 이러한 형태를 취하더라도 펜촉 자체의 크기, 즉 소형닙이냐 중형, 대형닙이냐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이런 B닙 계열 중에서도 Oblique로 또 구분되는데 영어로는 비스듬하다는 뜻이며 15도 각도로 사선으로 커팅된다. 닙을 위에서 바르게 보았을 때 우측 상단에서 좌측 하단 사선으로 절단되며 양 끝단이 살짝 부드럽게 처리된다. 여기서 양 끝지점도 마감없이 각지게 된 펜촉이 이탤릭 계열의 펜촉이다. 획의 끝지점까지 날카롭게 표현이 되지만 필감의 부드러움이 줄어들고 익숙하지 않은 경우 종이를 찢는 경우가 많다. OF, OM, OB, OBB 등으로 나뉘어지며 사실상 OM 밑으로는 일반 F 펜촉도 마감 수준에 따라 슬릿 길이가 맞지 않는 개체들이 많아서 구분하는 의미가 없다. 비전문가라면 OF나 F를 구분하기 어렵다. OM 정도부터는 그 매력이 느껴지는데 본격적인 닙 사이즈는 OB로 보면 된다. 물론 현행 OM은 거의 라운드닙에 가까워서 빈티지 Oblique닙의 필감과는 차이가 존재한다.
영미권 문자를 쓰는 국가들에선 Oblique닙 계열을 굉장히 선호하는데 우선 일반 B닙이나 이탤릭 닙은 펜촉이 회전하는 구간에서 필각에 제한이 발생한다. 따라서 사선으로 커팅된 오블리크 닙으로 필기체를 자유스럽게 구사하는 것이 좋으며 필압에 따라 슬릿이 벌어질 때 일반 스텁닙에 비해서 제약이 덜하다. 또한 오블리크 닙 특유의 스위트 스폿이 존재하는데 이를 찾아가는 재미 역시 좋으며 해당 스팟을 찾고 길들여감에 따라 찾아오는 오묘한 쫀득한 필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러한 필감은 자음, 모음 단위로 획이 띄어지는 한글 보다는 단어단위로 이어지는 영문 필기체를 쓸 때 극대화 된다. 처음에는 스위트 스폿을 찾지 못했을 경우 굉장히 헤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역시 오블리크닙에 대한 재미를 찾는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OB닙을 익히고 나니 다음에 눈에 들어오는 닙은 가장 태필인 OBB였다.
oblique계열 닙을 제일 잘 만드는 회사는 독보적으로 몽블랑이다. 펠리칸의 닙들도 써보고 닙 마이스터들이 제작한 커스텀 닙들도 써보았지만 빈티지 몽블랑 닙의 필감을 따라오긴 불가능했다. 획의 변화는 최강이었고 스위트 스폿과 슬릿이 벌어졌을 때, 그 두가지가 동시에 마주할 때의 필감은 만년필이 내줄 수 있는 필감 중 최고의 절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만년필스럽다는 필감은 개인적으로 B닙 이상에서 느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다이어리, 메모지 등 실생활에서 쓰기엔 제약이 따르지만 필감만 놓고 본다면 Oblique닙은 독보적이다. 획의 굵기 변화는 10%에서 100%까지 10단계 이상을 내주며 최대 획 굵기에서도 잉크 흐름이 절대 끊기지 않게끔 해주는 스키슬로프 플랫 에보나이트 피드와의 조화는 완벽 그 자체다.
몽블랑의 기술력을 필러로 보는 이들이 많지만 그것은 라운드닙만 써봤을 수집가가 분명하다. 태필을 써보면 몽블랑의 펜촉 제작 능력에 대한 시각이 완벽히 달라진다. B닙 이상의 닙들은 펜 자체의 무게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워낙 티핑이 두텁고 종이와 큰 면적으로 밀착하여 그어지기 때문에 펜의 무게로 펜촉의 감촉이 흡수되지 않는다. 이런 이상적인 만년필스러운 필감을 느낄 수 있는 연식은 50년대 B닙까지다. 60년대부터는 티핑의 마감이 크게 달라지며 50년대와 40년대 차이도 분명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손에 꼽는 필감은 9호 닙 사이즈의 OB닙 이상이다. 몽블랑 139만 F, M, B, OB, OBB 모두 소장중이며 바로 옆에두고 비교하며 시필하고 낸 결론이다. 물론 단순히 139 F닙만 놓고 다른 모델과 비교하면 139 F도 좋은건 사실이나 수천자루의 만년필을 써오면서 성향 자체가 태필로 바뀌어가는 모습에 내 자신도 신기할 따름이다.
만년필 입문 시절 무조건 EF만 쓰던 때가 나도 분명 있었다. 오히려 현행 모델을 쓸 때는 무조건 세필이었는데 빈티지로 갈수록 태필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Oblique닙 사용 노하우를 정리하면 우선 펜과 종이와의 각도는 낮출수록 좋다. 물론 높아도 전혀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필각은 펜촉의 방향이다. 일반적으로 만년필 사용시 오른손잡이의 경우 10~11시 방향으로 두고 쓰게 되는데 oblique닙은 거의 9시에 두고 쓴다고 보면 된다. 9시에서 10시 정도가 이상적이며 위 사진의 OBB닙은 필각이 높다면 9시로 두면 스위트 스폿을 찾기가 쉽다. 여기서 본인의 종이와의 필각에 따라서 미세 조정이 필요한데 연습이 어느정도 필요하다. 한번 찾아두고 익히다보면 자연스럽게 찾아가게 되며 일반 B닙 보다도 유연하게 대응이 가능하기에 크게 어렵진 않다. 물론 빈티지 모델의 경우 풀 플렉시블하기에 대응 난이도는 더욱 낮아진다. 획의 변화는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약한 필압으로도 드라마틱한 차이가 보여지는데 영문 필기체를 쓴다면 굉장히 멋드러지게 써진다.
물론 만년필을 처음 쓰는 사람이라면 오블리크닙은 피해야한다. 오블리크닙을 즐겨 썼음에도 OBB를 쥐었을 때 몇시간 정도는 헤맸을 정도다. OB와 OBB는 또 크게 다른 펜촉이다. OM에서 OB 넘어갈 때는 이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다. 확실히 대형닙이라 정도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 듯 보여진다. 익숙해진 OBB는 더욱 자극적인 필감을 내주고 있어 OB닙에 무뎌지게 만들고 있다. 다시금 말하지만 몽블랑 139와 OB닙은 정말 다양한 만년필들을 써본 뒤에 접하는게 좋다. 139를 접하기 전에는 한단계 한단계 더 높은 레벨의 만년필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으나 139를 접한 지금은 하위 레벨의 펜들만 쓰게되는 느낌이 들 정도다. 모든 취미는 낮은 것에도 높은 것으로 올라가는 재미가 있어야 더욱 오래, 재밌게 즐길 수 있음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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