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 149 캘리그래피 모델에 에보나이트 피드를 이식해달라는 의뢰. 사실 전에도 몇번 받았었고 처음엔 거절했으나 호기심에 한번 하고나니 묘한 재미를 느끼고 있다.
우선 현행 피드를 심도있게 살펴보자. 초기의 몽블랑 149 플라스틱 피드는 에보나이트 시절과 마찬가지로 잉크 채널과 에어 채널이 한곳에 위치한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에보나이트 재질에서 플라스틱 재질로만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재질이 친수성인 에보나이트에서 플라스틱으로 바뀌게 되며 하트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잉크채널의 건조현상이 과하게 발생하기 시작한다. 피드의 구조가 현행으로 넘어오면서 다른 브랜드들의 제품들은 에어채널이 하단으로 빠지고 하트홀의 위치는 그대로 유지되는데 피드의 잉크 스트림 라인이 하트홀 중심부를 그대로 가로지르게 된다. 캡을 닫아두지 않고 두었을 경우 시간이 짧더라도 잉크가 바로 나오지 않는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몽블랑은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스트림 라인을 두갈래로 나누고 가운데 하트홀 부근을 에어채널로 따로 두기 시작한다. 하트홀과 연결되는 에어채널은 피드의 윗면에 위치하지만 배럴과 연결되는 통로는 하단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하트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스트림 라인을 가운데 한곳이 아닌 양쪽 두갈래로 나누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펠리칸 m800에서도 볼 수 있다. 몽블랑이 펠리칸과 다른 점은 몽블랑은 갈라진 두갈래의 스트림 라인을 직각으로 두번 꺾어 하트홀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합쳐지게 만드는데 이로인해 흐름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나타나는 현상의 정도는 펜촉에 따라 달라지는데 기본적인 원인은 다음과 같다. 프라모델 취미가 있는 사람은 쉽게 이해가 갈텐데 먹선 넣을 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직선 몰드와 수직으로 꺾인 몰드에 먹선을 넣을 때 아무래도 직선 타입의 몰드가 시원하게 뻗어나가게 된다. 또 149 피드의 경우 표면장력을 높이기 위해 스트림 라인이 굉장히 좁은데 잉크가 피드 끝 지점까지 다다르는 속도는 빠르지만 장시간 필기시 혹은 이번 케이스와 같은 캘리그래피 닙 사용시 잉크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펠리칸 소버렌 시리즈에 들어가는 피드는 아예 직선으로 끝까지 뻗어있고 스트림 라인을 두껍게 만들어 닙 상단에 잉크를 포진시켜 공급하는 방식으로 디자인 되어있다.
스트림 라인의 중요성은 하트홀을 가로지르는 한줄의 스트림 라인을 가진 만년필들의 수리 케이스를 보면 알 수 있다. 하트홀에 스트림 라인이 정확히 중앙에 오지 않는 개체들에서 잉크흐름 이상이 발생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된다. 슬릿과 스트림 라인의 일치는 꽤나 중요한 사항이다. 물론 현행 몽블랑 피드의 구조를 가져가면서 하트홀에서 잉크가 쏟아지는 것을 완벽히 차단하게 된다. 굳이 캡을 상단에 두게끔 가슴 포켓에 보관하지 않고 파우치에 넣어 가방에 보관해도 잉크가 쏟아지는걸 예방하는 효과를 갖는다. 해당 부분이 빈티지와 현행을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번 몽블랑 149 캘리는 풀 플렉시블 닙으로 아주 풍부한 잉크 공급이 뒷받침 되어줘야 하는데 현행 피드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답답한 흐름을 해소하기 위해 에보나이트 피드로의 교체를 원하는 사용자들이 많은 것이 아닐까 싶다. 교체할 피드는 70년대 솔리드 라운드 형태의 에보나이트 피드다. 현행 하우징에는 에보나이트 피드 규격이 맞지 않아 가공이 필요하다. 현행 피드를 빈티지 하우징에 끼우는 것 역시 사이즈가 달라 가공이 필요하다. 따라서 신중한 고민 후에 작업하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현행과 빈티지는 분해 툴 홈의 위치가 달라 각기 다른 분해 툴을 사용해야 한다.
이식은 성공적이었고 유격없이 완벽하게 작업되었다. 몽블랑 149 캘리의 연성감은 묵직함 없이 가벼운 스프링 느낌이라 필감 자체는 아쉽지만 그래도 현행 149를 연성펜촉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에 꽤나 인기있는 모델이다. 그런데 피드를 일반 피드를 달아주면 제 성능을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게 아닐까? 기존 피드 장착시 캘리그래피로 짧은 단어를 쓰는 경우엔 끊어짐이 없었지만 긴 단어, 문장으로 넘어가면 끊어짐이 발생했다. 에보나이트 피드로 교체한 뒤의 테스트에서는 잉크 끊김 없이 진하고 시원한 흐름으로 그어진다.
피드의 구조가 복잡해질 수록 안정성은 높아지지만 단순히 필기 능력치만 보았을 땐 빈티지의 것이 우수한 것은 off the table이다. 왜 굳이 현행 플라스틱 피드를 피곤하게 복잡스럽게 만들었는지는 사출 금형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이 역시 납득이 바로 될것이다. 금형 하나를 파두면 끊임없이 찍어댈 수 있다. 양산성을 고려한 한계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하트홀의 기능을 살린 몇 안되는 만년필 중 하나인 것은 인정할만 하다. 마지막으로 하트홀의 크기가 펜촉의 연성도를 결정하는 요소라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미미하며 차라리 하트홀의 위치가 더 큰 역할을 해준다.
정 직접 경험해봐야겠다 싶다면 플래티넘 개더드를 현행 한자루, 빈티지 한자루 구매해서 현행에 피드만 바꿔가며 써보는 것도 좋은 실험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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