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4대 만년필 브랜드라 하면 워터맨, 파커, 쉐퍼, 에버샤프가 대표적이다. 에버샤프 브랜드는 정확히는 Wahl-Eversharp 명칭으로 1900년대 초반에 에버샤프가 Wahl에 인수되었다. 결국 50년대에 파카에 합병되지만 초기 역사에 있어서 놓쳐서는 안될 브랜드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의 4대 브랜드는 높은 품질의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고 특히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를 보였다. 워터맨은 리플 디자인을 선보였고 파카는 붉은색 하드러버, 쉐퍼는 평생 보증 등 각각의 브랜드의 독창성이 묻어나는 모습이다. 특히나 플라스틱 재질이 가장 처음 등장한 시점이 1920년대인데 무겁지 않은 펜에서도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서막을 올린 모델이 바로 워터맨 패트리션.
하지만 대공황으로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영세 브랜드들은 모조리 파산하였고 메이저 브랜드만 살아남았다. 사실 워터맨의 패트리션 등장으로 당시 만년필 트렌드 판도를 바꿔버렸으나 하이엔드 모델이라 그 펜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다른 브랜드들도 뒤쳐지지 않고 워터맨을 따라 독특한 디자인 혹은 새로운 필링 메커니즘을 출시했다. 파카의 버큐매틱, 쉐퍼의 밸런스, 에버샤프의 도릭 등. 확실히 당시 미국의 빅4가 존재했지만 선두주자는 워터맨이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빅4는 무너지고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시장 방향이 바뀌어버렸고 볼펜의 등장으로 더 이상 비싼 필기구는 팔리지 않게 되었다. 에버샤프는 파카에 인수되었고 워터맨은 몰락하여 중저가 라인 강세였던 파카와 쉐퍼 2강 구도로 바뀌게 된다.
빈티지 펜들을 수집해보면 확실히 느껴지는데 pre war 연식을 기준으로 만년필 디자인 트렌드가 확연히 느껴질 정도다. 절제된 디자인으로 유명한 몽블랑 139에서 149로 넘어가는 모습만 봐도 이해가 된다. 수십년 뒤 만년필이 필기구 개념에서 액세서리 개념의 사치제로 바뀔 때 디자인이 다시 화려해진다. 결국 트렌드가 돌고 도는 느낌인데 pre war 시절과는 온도 차이가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pre war 시절이 아니더라도 만년필의 재부흥이 일어났던 시기는 존재한다. 바로 1970년대 즈음부터 1980년대까지. 아마 개인적인 견해로 보았을 땐 볼펜이 장악한 필기구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던 저가형, 저품질 만년필에 질려 고품질 만년필에 대한 니즈가 시장에 반영된게 아닐까 싶다. 그로인해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명펜들을 복각하는 등 활발한 만년필 시장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또다시 레트로 열풍이 돌고 있는데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엔 필름카메라에 그 열기가 전이 되었는데 코로나로 야외활동이 제한되고 있는 지금, 만년필 재부흥이 임박해 있지 않나 싶다. 미국에서 만년필샵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 역시 매출이 코로나 때문에 오히려 증가했다고 말할 정도. 파카에서 파카 51도 복각했는데 왠지 모르게 1980년대와 평행이론을 달리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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