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저스터스 95 현행 만년필은 1918년 설립을 기준으로 95주년 되는 해에 출시한 기념 모델이다. 2013년 재등장한 모델이며 최초 모델은 1979년도 출시했었다. 현행 모델이 오리지날로 알고 있는 이들이 많으나 빈티지 복각품임을 명심하자. 저스터스 모델은 에버샤프 도릭을 리뷰할 때 항상 언급했는데 단순 카피가 아닌 개량된 연성도 조절 기능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기존 에버샤프 도릭의 어드저스터블 닙은 1단, 2단 등 단수로 연성도 조절이 가능하여 미세한 조정이 어려웠으나 파일럿 저스터스는 회전 방식으로 미세조정이 가능하다. 큰 차이가 있겠나 싶겠지만 미세조정에 따른 고정력이 높기 때문에 유의미한 부분이다. 도릭 이후 이렇다할 어드저스터블 닙이 나오지 않다가 저스터스 출시 후 또 다시 복각까지 이루어진 것을 보면 연성, 경성 두가지 다 잡을 수 있는 취향의 수요가 다시금 높아진 모습이다. 무엇보다 연성도는 디폴트로 정해져있고 사용에 따라 점차 커지기 때문에 균일한 연성감을 느끼기엔 한계가 있다. 어드저스터블 닙은 이런 문제점들을 해결했고 한자루의 만년필로 다양한 필감을 느낄 수 있는 폭넓은 선택지까지 제공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현행 연성닙들은 가벼운 스프링 성향이 강한데 오리지날 79년 모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프리 워 연식의 빈티지 연성감은 현행에 비해 묵직한 연성감을 주는 반면 시기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가벼워지는 연성감이 다소 불쾌함을 주게 된다. 물론 취향 차이라 현행의 가벼운 연성감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필자의 경우 묵직한, 녹녹한 연성감을 선호하기에 79년도 저스터스의 연성감도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현행과 빈티지 저스터스를 비교하면 빈티지쪽의 연성감이 조금 더 낫긴 하지만 드라마틱한 차이를 느끼긴 어렵다. 물론 닙 사이즈 자체가 다른데 현행이 조금 더 크다. 배럴 자체도 크고 캡 잠금 방식도 현행은 스크류 타입이지만 빈티지는 푸쉬풀 타입이다. 펜은 가벼운 편이며 캡은 배럴 깊숙히 들어가 밸런스가 상당히 좋은 편이다. 현행은 캡을 뒤에 꽂았을 때 깊숙히 들어가지 않는 전형적인 커스텀 라인과 비슷한 수준이라 밸런스가 무너진다. 연성도 조절 기능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며 79년 모델을 현행 스타일에 맞추어 잘 복각해내었다. 그립부를 회전시켜 연성도를 조절하는데 1도까지 정말 미세한 조정이 가능하며 고정력은 예상외로 강력하다. 쓰면서 고정이 풀려 돌아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본적인 원리는 그립부에서 슬릿으로 연결되는 부위에 금속 판을 덧대어 슬릿이 벌어지는 각을 제한하는 것인데 작동과 사용에 따라 금속 판이 펜촉 위를 긁어 나는 스크래치가 단점이다. 필감 자체는 흔한 빈티지 파일럿 느낌, 사각거리면서 극세필에 탄성감, 거기에 연성도를 취향에 맞추어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연성도에 따라서도 필감이 조금씩 변하기에 한가지로 결론을 내리기엔 무리가 있다. 잉크흐름은 풍부한 편이며 표면처리가 된 플라스틱 재질로 잉크건조를 막아주는 피드가 장착되어 있다. 해당 기술은 한국 파일럿 만년필에도 적용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잉크흐름은 좋은 편이나 슬릿을 열고 계속 쓰다보면 끊기는 현상은 발생한다. 물론 에보나이트 피드가 장착된 빈티지 연성 모델이 아닌 이상은 대부분 끊기는 편. 그에 비하면 덜한 편이다. 일제 만년필들은 70년대나 현행이나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데 이게 오히려 만년필에 있어서 큰 이점으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누차 말하지만 만년필은 만년필스러워야 본래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인데 시장반응을 보더라도 모던한 디자인 보다 앤틱한 모델을 출시했을 때 수요가 더 높아지는 현상을 매번 보이고 있다.
현행 디자인의 표본인 모델들과 그립부 스레드가 비슷한 점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무게감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라폰파버카스텔, 까렌다쉬 등 모던한 모델들의 특징이 내부에 메탈재질의 소재들을 한가득 채워 무게감을 증폭 시키지만 저스터스의 스레드는 얇고 배럴 내부엔 메탈재질이 없으며 애초에 밀도 높아 무거운 재질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립 스레드가 메탈 재질이면 묵직한 이미지가 강하기에 오해 없길 바란다. 반면 현행은 살짝 무거운 편이니 무게감을 바란다면 현행 저스터스를 선택하면 된다. 빈티지와 현행의 트렌드 차이는 무게감도 빼놓을 수 없는데 현행은 묵직한 무게감을 주려고 하지만 빈티지는 고가형 모델이더라도 일부 순은, 순금 모델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볍게 만든다. 대형기 접속부에도 금속 재질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가벼운 무게감으로 손의 피로도를 덜 수 있다. 펜이 무거워야 필압을 덜 주어 손의 피로도를 덜 수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볼펜의 경우이지 만년필은 펜이 아무리 가벼워도 필압없이 필기가 가능하다. 무거운 만년필과 가벼운 만년필 두자루를 몇시간 써보기만 해도 쉽사리 알 수 있는 부분이니 직접 테스트해보길 바란다. 가벼운 만년필의 피로도가 더 높다면 본인의 필압이 높은 편이니 줄여보는걸 추천한다.
가벼우면서 연성감 있는 펜촉에 잉크흐름이 좋다면 좋은 만년필이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는 모두 갖춘 셈이다. 플래티넘의 게더드, 파일럿의 저스터스 등 만년필 사용자들의 니즈를 조사하고 반영하여 개발해낸 모델들은 인기가 없을 수가 없다. 오리지날 저스터스에 대한 악평이 간혹 보이지만 이는 초기형이 아닌 후기형 모델들로 높은 제조원가로 인해 금촉에서 스틸닙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이다. 초기형 금촉의 닙이 연성감이 더 좋고 변화폭도 큰 편이다. 올려놓은 사진을 보더라도 극세필 시작점을 기준으로 B닙 수준까지 슬릿이 충분히 벌어지기에 연성도가 제한된다는 평은 다소 받아들이기 어렵다. 필압은 최대치로 주지 않았고 파지는 배럴 중간부위를 한 상태로 슬릿을 벌려본 상태다. 퍼스트이어 모델은 대부분 시제품 성향이 남아있기에 시장반응을 보고 개선해나가면서 2세대, 3세대 모델들로 거듭나지만 저스터스의 경우엔 퍼스트이어 모델이 금촉이 장착되어 가장 희소하면서도 성능이 좋은 연식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필기를 해보아도 이정도 연성도 조절은 충분하다고 판단했으며 닙 사이즈 비율로 보았을 때 현행과의 배리에이션 차이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정리하면 빈티지 저스터스를 쓰고싶다면 후기형이 아닌 금촉 버전의 초기형을 찾으면 된다.
일본 카메라도 1970년대 모델과 1980년대 모델의 차이는 꽤나 큰 편이다. 오히려 70년대 SLR 모델들의 완성도, 내구성이 더 좋은 편인데 80년대 넘어서면서 공산품에 대한 원가절감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흐름을 볼 수 있다. 물론 제품에 따라 편차가 있겠지만 몽블랑 만년필도 80년대 연식 이후 모델들에서 원가절감 포인트가 급증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80년대로 넘어가기 직전 79년도에 걸친 저스터스 오리지날은 원가절감하지 않은 파일럿의 역작 중 하나로 꼽을만 하다. 빈티지 파일럿을 떠올리면 대부분 뮤, 커스텀 모델을 떠올리지만 이외 다양한 모델들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두면 더욱 폭 넓은 선택지가 열리게 된다. 일제 만년필들은 서양의 만년필 브랜드에서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지만 단순 카피제품들이 아닌 기존에 개량을 얹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에버샤프 도릭은 연성도 조절시 펜촉 하단부 금속 레버를 누르면서 조절하기 때문에 레버에 잉크가 묻어있는 경우 손에 묻어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저스터스는 잉크가 묻지 않은 그립부를 잡고 돌리며 더욱 미세하게 조정까지 가능케 했다. 카피와 벤치마킹의 차이는 명백하다.
절대수치로 본다면 필감 자체는 아쉽지만 기능성을 탑재한 부분은 굉장한 재미요소로 작용하며 완성도 높고, 밸런스 좋은 만년필로 평가하고 싶다. 필감만을 따진다면 도릭의 어드저스터블 닙이 훨씬 더 매력적이다. 컨버터는 현행과 호환 가능하며 앤틱 스퀴즈 타입이라 잉크량이 부족한 편이다. 연성닙은 잉크를 많이 먹기에 되도록 피스톤필러 모델을 추천한다. 스퀴즈 타입과 연성닙은 최악의 조합이 아닐까 싶다. 샤프를 구매할 때 보는 요소가 재미있는, 신기한 기능인데 만년필에서도 그러한 기능성을 생각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모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극히 일본스러운 대표 일본 만년필로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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