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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칸 100, 펠리칸 최초의 만년필

Fountain pen/Pelikan

by 슈퍼스토어 2020. 2. 1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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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1.최초의 만년필

독일 잉크회사의 만년필 데뷔작이자 피스톤 필러 방식이 최초로 도입된 빈티지 만년필의 성배, 펠리칸 100이다. 최초 등장은 1929년, 펠리칸 역사의 시작은 1838년으로 엄청나게 오래됐지만 만년필은 다른 메이저급 브랜드에 비해 늦은 편이다. 당시 대부분의 만년필들은 셀프 필링 방식을 하지 못해 아이드로퍼를 따로 들고 다녀야하는 번거로움이 컸다. 그런 만년필 시장에서 2020년인 지금까지도 쓰이는 피스톤 필러 방식이 채용된 만년필은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모델이 아닐까 싶다.

1920년대 후반의 독일은 당시 유럽 국가 중 전쟁을 겪으면서 발달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2차세계대전 초반의 양상만 보아도 독일은 전차를 끌고 폴란드를 침공했지만 농업국가였던 폴란드, 프랑스는 말을 타고 싸우다가 전멸한다.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독일 공산품은 오늘날 소위 명품이라 불리우는 클래식 제품들을 많이 탄생 시킨다. 대표적으로 현재 천만원에 육박하는 카메라를 제작하는 라이카가 있다.

1920년대에서 1960년대 사이에 생산된 공산품은 오늘날 기성품, 양산품과는 비교 불가하다. 제품 하나에 수많은 숙련된 장인들이 개입하며 제품 하나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상품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명품을 만든다는 생각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 시기에 탄생한 펠리칸 100은 펠리칸 만년필의 뿌리가 된다. 분해하기 간편한 닙파츠, 피스톤 필러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펠리칸의 전통이다. 펠리칸 100 최초의 모델은 heart shaped hole(하트홀)을 가진다. 오늘날에도 펜촉에 있는 동그란 구멍은 하트홀이라고 불리우는데 빈티지 만년필에선 이름처럼 하트 모양의 하트홀을 볼 수 있다. 캡은 트위스트 방식이며 캡 링이 존재하지 않는다. 캡에는 2개의 공기 구멍이 있고 바디와 캡은 하드러버 재질로 제작된다. 펜촉 역시 에보나이트 피드.

최초의 펠리칸은 펜촉 생산을 자체적으로 해내지 못하여 몽블랑에서 납품 받은 펜촉이 장착된다. 몽블랑 펜촉이면 더 좋은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겠지만 1920~1930년대의 몽블랑은 파카, 워터맨, 쉐퍼 보다 한참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개인적인 관점으로 극초기형의 100은 매력이 떨어진다. 펠리칸 빈티지를 산다면 모든 파츠가 인하우스로 제작된 제대로된 명품 만년필을 구매하는게 좋지 않을까.

1929년도에 생산되어 1944년도까지 총 16년간 생산된 모델로 연식 구분은 총 10단계 이상으로 구분된다. 생산 기간이 짧은데 다양한 변화 과정을 거쳐서 수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몽블랑 149를 전문적으로 수집한 것 처럼 펠리칸 100, 100N만을 파고드는 수집가들도 많다. 특히나 해외펜쇼를 나가보면 언제나 빈티지 펠리칸을 전시한 부스는 북적댄다.

펠리칸 컬렉터 부스 앞에 북적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펠리칸 100 피스톤 필러의 코르크 씰을 교체하기 위해서다. 펠리칸 100의 가장 큰 특징인 코르크 씰은 빈티지 감성을 제대로 선사한다. 극초기의 펠리칸 100N에서도 코르크씰이 확인되는데 일반적으로 100의 특징이라고 보면 된다. 몽블랑 149 50년식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코르크를 찾아보기 힘들다. 펠리칸 컬렉터들은 다른 사람들의 코르크 씰을 교체해주는걸 즐거워한다. 그들의 펠리칸 사랑은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chapter2.완성된 100

단 하나의 빈티지 몽블랑 149를 고를 땐 64년식 149였지만 하나의 빈티지 펠리칸 100을 고르라면 1931년식이다. 우리가 흔히 눈에 그릴 수 있는 중결링 캡에 인하우스 제작된 펠리칸 펜촉이 장착된다. 그외 구분점으로 특징적인게 그립 섹션의 변화다. 위 사진을 보면 좌측의 그립 상단부가 완만한 곡선을 그리지만 우측은 나팔바지처럼 굴곡이 크다. 이전에 캡탑의 변화가 미리 있었다고는 하지만 독일의 펠리칸 전문가에게 연락했을 땐 해당 개체를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당시 만년필의 개체수가 워낙 적을 수도 있고 과도기일 수도 있고 교체 가능성도 생각해야 하므로 나는 캡탑과 그립 섹션의 변화를 동일 선상에 두었다.

이후 1930년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닙 사이즈 마킹이 피드 부분에 음각으로 각인된다. 몽블랑의 에보나이트 피드 내구성은 지적할데가 없지만 펠리칸의 구형 피드는 굉장히 얇고 파손이 잦은 편이다.

그래서 위 사진처럼 피드의 가운데 아랫부분을 파손된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펠리칸 100N의 피드는 위 사진처럼 가운데 아랫부분이 비어있지 않다. 하지만 100은 저 피드가 올바르다. 파손된게 아니고 아예 저렇게 성형되어 생산된다. 피드의 재질은 에보나이트라 친수성이 좋고 굉장히 직관적인 구조라 풍부한 잉크 흐름을 보여준다. 또한 100은 스트레이트 펜촉 가공 형태를 가져 1930년대 플렉시블한 연성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필름카메라하면 머릿속에 흔히들 떠올리는 이미지가 니콘 FM2 기종인데 만년필은 펠리칸 100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디자인만 따지면 몽블랑 마이스터스튁일지 모르겠으나 낭창거리는 펜촉과 아날로그 감성은 펠리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후 1930년대 후반에 닙 사이즈 마킹은 피드가 아닌 피스톤 필러 노브쪽에 음각으로 각인된다. 이로인해 펜촉이 교체된걸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생겨 오늘날 빈티지 컬렉터들에겐 좋은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펜촉 교체가 쉬운 부분은 사용성에선 높은 점수를 받지만 수집가들에겐 조합품의 여지를 줄 수 있어 피곤하다.

그럼과 동시에 캡탑의 로고 또한 바뀌게 된다. 펠리칸 m800의 로고 변화에서 줄어드는 새끼 펠리칸 수는 펠리칸 내의 만년필 장인의 수를 투영한다고 하는데 20년대 후반, 즉 최초의 100부터 30년대 후반까지 4마리 새끼 펠리칸이 들어간 로고를 사용한다. 바뀌게 되는 로고는 오늘날의 로고와 비슷한 형태이며 새끼 펠리칸이 두마리다. 펠리칸 수가 가장 많은 로고를 확인 할 수 있다. 굉장히 올드한 디자인이라 클래식하고 멋스럽다. 단순히 로고가 아닌 예술작품 분위기까지 연출한다.

로고 변화와 함께 찾아온 다른 큰 변화는 재질의 변경이다. 캡과 그립, 노브에 하드러버 재질의 쓰였는데 1938년식을 기점으로 셀룰로이드 재질로 변경된다. 하드러버를 선호하는 사람과 셀룰로이드를 선호하는 사람이 나뉘는데 두 재질 모두 매력적이다. 하드러버의 손에 착 달라붙는 그립감, 셀룰로이드는 매끈하면서도 오래 사용하면 점차 색이 자연스럽게 빠지는데 빈티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개인적으로 100은 하드러버 재질, 100N에서 셀룰로이드 재질을 선택해보길 추천한다. 그래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1930년대 후반을 지나면서 펠리칸 100에는 전쟁의 역사가 묻어난다. 그 특징은 펜촉에서 확인 할 수 있다. 2차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독일은 금 사용을 제한한다. 전쟁에 있어서 금은 스타크래프트에서의 미네랄과 같다. 군용품, 무기 등을 구입하는데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금은 핵심 요소다.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군비증강으로 인해 금이 부족해졌고 헝가리, 루마니아로부터 금을 약탈한다. 이후에도 유럽 전지역을 휩쓸며 금을 약탈해 나가며 군비를 확충한다. 독일 내의 모든 공장에선 금 사용이 제한되었고 금 재질 펜촉이 아닌 백금족 팔라듐이나 스텐 펜촉이 장착된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의 역사를 거친 만년필은 이렇게 전쟁의 역사가 담겨있어 더 큰 의미가 된다. 40년대 후반에 들어서 내구성이 좋지 않았던 코르크 씰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고무재질의 씰로 바뀌게 되는데 이는 오늘날까지도 멀쩡히 작동하는 개체들이 존재한다.

2차세계대전이 종결하기 1년전인 1944년 펠리칸 100은 위와 같은 특징들을 갖고 단종된다. 하지만 펠리칸 100의 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1937년 전쟁 전부터 100N 시리즈가 등장했으며 조금 더 커진 사이즈, 커진 잉크 충전량 등 N을 붙여서 더욱 필기에 적합한 모델로 출시되었다. 펜촉의 가공방식 역시 달라졌고 벤딩닙이 등장하여 언제 어디서든 안정적인 필기를 가능케했다. 그러한 필기구로써의 완벽한 성능을 갖춰 필기 중독자였던 아인슈타인의 가슴 포켓에 오랫동안 꽂혀있었다.

펠리칸 100은 단순한 필기도구가 아닌 독일의 역사가 담겨있는 빈티지 성배다. 나치 시절의 독일의 모습이라 불쾌할 수 있으나 독일은 자신들의 죄를 반성하고 있다. 밝은 모습의 역사가 담겨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만년필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세계사에 잊혀서는 안될 중요한 역사를 상기시킬 수 있다.

짧고 뭉툭한 만년필, 펠리칸 100. 한 손 안에 다 들어가지만 그 펜에 담긴 역사를 담을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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