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만년필 애호가인 내게 단 한자루의 만년필을 고른다면 어떤 펜을 선택할거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만년필 매니아이자 몽블랑 매니아인 나의 원픽 만년필이 어떤 것일지 많이들 궁금할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favorite 모델은 몽블랑이 아니다. 그렇다고 하이엔드 브랜드 제품도 아니다. 그럼 어떤 펜일까?
바로 stoffel's quallitat 라고 거칠게 새겨진 아래 모델이다. 구매 당시였던 2014년도엔 아무리 검색해도 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는데 이후 만년필에 대한 지식을 쌓아가며 해당 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연식은 1960년대 제품이고 독일제 만년필이다. KAWECO의 초창기 모델이라는 정보도 있었는데 정확하진 않아보인다. 이야기는 그만하고 직접 사진을 보며 알아가보자.
펜 상태는 굉장히 좋지 않다. 구매 당시부터 외관은 거친 바닥에 긁혀있는 상태였고 펜촉과 피드 정렬도 엄청 틀어져 있었다. 일단 구매처를 말하자면 유럽여행 당시 첫 국가였던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현지인들의 벼룩시장이었다. 관광객은 전혀 없어서 제대로된 이탈리아 냄새를 맡을 수 있던 곳이었다.
만년필은 물론이고 가정에서 쓰던 식기류, 의류, 잡화 등등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었으며 가격대는 천차만별이었다. 직접 만져보고 열어보고 확인 후 구매할 수 있었던게 마음에 들었다. 만년필을 판매하는 팀은 3~4군데 정도 있었는데 내가 구매한 곳은 부부가 깔아놓은 좌판이었다. 집에 있는 문구류를 다 들고나와서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른 좌판은 유리진열대까지 들고나와서 그 안에 만년필을 디스플레이 해놨었는데 펜쇼의 한 부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펜 컬렉션은 당연히 훌륭했고 상태 역시 민트급 이상들만 취급하고 있었다. 구하기 힘든 파카51도 구경 잘하고 왔다.
아래 펜 가격은 단돈 10유로. 당시엔 유로가 지금처럼 폭등한 상태가 아니어서 만원 언저리에 산걸로 기억한다. 다른 상태 좋은 펜들도 있었으나 오픈닙에 내 취향인 블랙과 금장 디자인이라 다른 펜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펜촉은 GOLD PLATED 14 라고 각인이 되어있다. 도금 펜촉이며 스텐닙의 아주 거친 필감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써본 만년필 중 가장 사각거리는 펜이다. 양피지에 쓰지 않아도 조용한 방안에서 쓰면 사각사각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이 펜의 가장 큰 특징은 조금 독특한 피스톤 필러 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피스톤 필러라면 뒤쪽 노브를 돌렸을 때 노브가 나사산을 타고 뒤로 밀려나온다. 그런데 이 펜의 필러는 노브가 고정된 상태로 회전하는걸 볼 수 있다.
잉크를 빼내어도 위 사진을 보면 뒤쪽 노브가 그대로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정성도 괜찮아서 잉크가 샐 위험도 없다. 피스톤 헤드는 2중 구조로 잉크를 제대로 빨아들여준다. 60년이 된 펜이지만 별다른 관리 없이도 피스톤 헤드 뒤로 잉크가 한방울도 넘어가지 않고 정상 작동한다. 동일 연식 몽블랑 만년필이라면 오일링 없이 부드럽게 피스톤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펜 사이즈도 컴팩트한 편이다. 손이 작은 사람에게 편안한 그립감을 주고 금속 재질은 닙과 클립 외에 쓰이지 않아 무척 가볍다. 캡을 뒤에 꽂아도 무게감이 뒤로 쏠리지 않아 안정적이다.
바디 스크래치가 엄청나다. 이렇게 엉망인 상태지만 나의 최고의 만년필이다. 아마 새로 산 몽블랑 만년필이 저렇게 됐다면 애정이 식어버리지 않을까?
이 펜을 쓸 때마다 추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걸 깨닫고 있다. 아무리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펜이 생기더라도 내 손에 가장 많이 쥐어져있는 펜은 이녀석이다. 엄청난 고난을 겪어온 모습인데도 지극히 멀쩡한 모습이다. 내구성은 정말 최강이다.
벌써 이 펜만 세번째 포스팅하는데 이걸로 끝내본다. 이 펜을 구할 수 있는 루트는 없다. 팔 생각도 없다. 여러 만년필을 수집하며 본인의 손에 가장 잘 맞고 추억이 담긴 만년필을 직접 찾아보기 바란다.
STOFFEL'S quallitat 빈티지 만년필 (0) | 2020.0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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