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tain pen/Pelikan

극초기형 펠리칸 100 빈티지 만년필 개체편차 (feat.4마리 새끼 펠리칸 로고)

슈퍼스토어 2024. 2. 2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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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마리 새끼 펠리칸이 그려진 펠리칸의 만년필 최초 로고는 매번 볼 때 마다 설렌다. 멀리서 언뜻 보면 기괴하고 어떤걸 그려놓은건지 분간이 되질 않지만 가까이, 자세히 들여다 보면 상당히 앤틱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초기형 로고는 1930년대 중반까지 연식에서만 볼 수 있으며 이후 오늘날의 펠리칸 로고와 비슷하게 변경된다. 만년필 이전의 펠리칸 로고에서도 새끼 4마리가 그려져 있었고 손으로 그린 회화스러운 느낌에서 만년필에 적용함과 동시에 픽토그램스러운, 정형화된 디자인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점차 다듬어지다가 새끼 2마리를 그릴 공간에 한마리로 몸통까지 표현하면서 현행 로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로고 변화로 인해 펠리칸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새끼 펠리칸의 수가 많을수록 필감이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신기하게도 펠리칸 100 전 시리즈의 로고는 음각에 잘 지워지는 도료로 채워지는데 이 때문에 현존하는 개체들 중 오리지날 도료가 남아있는 개체를 찾아보기가 굉장히 어렵다. 대부분 지워져 음각만 남아있을 뿐 오리지날 초록색 도료 버전의 로고를 직접 확인한 매니아들도 거의 없다. 캡의 재질이 하드러버에서 셀룰로이드로 변경 되어도 마찬가지인데 후기형 400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린 컬러의 개체는 그린 색상의 도료가 채워지고 토토이즈 쉘 라인은 노란색 도료가 채워지는 등 모델 컬러에 따른 로고 색상 변화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공식적으로 4마리 로고를 확인할 수 있는 모델은 100이 유일한데 아주 극초기의 100N(프로토타입)에서 4마리 로고 캡이 확인되고 있다. 다만 이외 4마리 로고 개체들은 조합일 가능성이 있어 하드러버 재질과 호박색 잉크창 등의 연식 특징들이 갖추어져 있어야 오리지날 개체이다.

당시의 펜촉 마감에도 독특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벤딩닙이다. EF 세필의 경우 필압을 살짝만 가해도 연성닙의 슬릿이 벌어지며 획이 두꺼워지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닙의 앞 부분을 살짝 구부려 가공하며 일정 수준의 약한 필압에서는 가는 획을 유지하게 된다. 물론 필압을 주어 획 변화를 줄 수 있으며 이는 빈티지 세필닙 만년필들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후 60년대 몽블랑에서도 확인이 가능하고 벤딩 가공이 되지 않은 연성 세필을 직접 써본다면 느끼겠지만 상당히 불편하다. 가늘게 쓰기 위해 EF닙을 선택했지만 쓸 때 마다 획이 계속해서 변화고 두껍게 그어지면 피로도는 극대화 된다. 펠리칸의 경우 F닙도 세필축에 속해 F닙에서도 해당 마감을 미세하게 확인이 가능하며 M닙 부터는 스트레이트 형태를 취한다.

물론 좋은 필감에 뒤따르는 치명적인 단점들도 존재한다. 초기의 피스톤 필러는 방대한 잉크 주입량으로 센세이셔널한 충격을 선사했으나 현행과 달리 손의 체온 전달을 완벽히 차단해주지 못하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피드의 안정성도 점차 높아지게 된다. 100 시리즈의 배럴은 셀룰로이드 이너배럴과 마블의 아웃배럴, 그리고 그 사이에 미드배럴이 들어간다. 이러한 3중 구조로 체온 전달을 차단하는데 잉크창 부근에서의 온도변화는 제대로 막아주지 못해 잉크창 부근을 손으로 감싸쥐면 잉크가 한방울씩 떨어지기도 한다. 또한 피스톤 씰인 코르크 재질의 씰은 내구성이 약해 주기적인 교체가 필요하다. 세이프티 모델에 들어가는 코르크보다 교체주기가 짧은데 그만큼 피스톤 왕복 운동으로 마찰에 의해 마모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세이프티의 코르크는 단지 와인처럼 밀폐만 시켜주기에 상당히 오래 사용이 가능하다.

이러한 아날로그틱한 감성 부분들이 빈티지 만년필의 매력을 절정으로 끌어올려 주는데 구조도 간단하고 사용도 간단하여 현실적인 20세기 초반의 빈티지 모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비슷한 감성을 내주는 독일제 모델은 13x 시리즈가 있으나 텔레스코픽 필러의 정비성도 좋지 못하고 가격대도 높아 접근성이 낮으며 개체수도 적어 부품 파손시 수리도 어렵다. 개인적으로 정말 빈티지스럽다라고 말할 수 있는 만년필은 하드러버, 코르크, 연성닙 이 세가지를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코르크 씰이 적용된 피스톤 필러로 잉크를 충전할 때의 느낌이라거나 코르크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주는데서 오는 감성은 제대로 된 빈티지함을 선사한다. 앤틱 제품들을 사용할 때에는 아무런 정비, 관리 없이 방치가 아니라 기름칠하고 닦아주고 교체해주면서 물건에 대한 애정이 들게 해주는데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게 오늘날 공산품과 다른 가장 큰 부분이 아닐까.

필름카메라 역시 필름을 교체하여 촬영하고 그 필름을 현상하는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을 즐김으로써 하나의 감성영역의 취미생활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구매해서 엔진을 길들이고 주기적으로 오일류를 교체해주고 직접 세차하며 생기는 애착은 다른 물건에서 오는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메인 제품을 기준으로 이외 추가적으로 소모품, 부수기재 등을 소비하면서 유지관리해주는 즐거움 또한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 점에서 만년필 역시 잉크를 계속해서 충전하며 무한대로 사용이 가능하고 피스톤에 오일링을 해주고 세척해주며 물건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일반 볼펜처럼 잉크를 다 쓰면 버려지는 물건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불편한 과정들이 단순히 불편하다고만 느껴진다면 오늘날 필름카메라, 만년필, 오토매틱 시계 등 아날로그 취미들은 남아있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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